책벌레의 하극상 제4부 귀족원의 자칭 도서위원 8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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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문 주의, 스포일러 주의






마인의 책 만들기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진흙 석판으로 시작해 나무를 깎고 파피루스를 흉내 내 풀을 엮어 조잡한 종이를 만드는 등 이세계에서도 책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나무껍질을 이용해 우리가 아는 종이를 생산하는데 이르렀지만, 그녀의 인생에 좋은 일만 있진 않았다. 귀족급으로 타고난 마력과 더불어 종이가 금보다 비쌌던 이세계에서 종이를 만드는 마인의 가치는 말해 무얼 하랴. 뒤는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렸던 마인에게 벌을 내리듯, 유괴라는 범죄에 휘말리고 납치되는 마인을 지키려 그녀의 가족은 목숨을 걸었다. 


그녀는 가족이 휘말리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하지만 때는 늦게 된다. 아무 힘도 없는 가족을 지키려면 그녀는 죽음을 위장해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선고가 내려진다. 그렇게 마인은 가족과 헤어지고 귀족의 양녀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렇듯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좀 자중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귀족의 양녀가 되어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서 책 만들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그렇게 가족과 헤어지고 수년이 흘러 드디어 우리가 아는 종이가 만들어지고 책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도 유통되기 시작한다. 가족과 헤어지면서까지 고집했던 그녀의 책에 대한 사랑은 결국 결실을 보았다고 할까.


이렇게 끝내면 이세계물로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주인공이 바랐던 세상이 이뤄졌으니까. 맨땅에 헤딩하듯 이뤄냈으니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에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작용이 있다면 반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마인의 책 만들기 이야기였다면 지금부터는 그 반동에 대한 이야기다. 비단 책과 종이만이 아니라 머리장식이나 샴푸 등 신문물을 퍼트리면서, '유르겐슈미트'라는 나라에서 여러 영지 순위 중 하위에 머물렀던 '에렌페스트'를 중위권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등 마인의 영향력은 대단히 커지게 된다.


더욱이 나라에 3명 있는 왕자 중 2명하고 안면을 틀게 되는데, 짝사랑하는 여자 한 명 두고 1왕자와 2왕자 사이 자칫 또다시 정변이 일어날지 모르는 극박한 사태에서 2왕자의 편을 들어 정변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중앙(왕족)에까지 영향력을 키웠으니 그녀만이 아니라 그녀가 속한 영지 에렌페스트는 범에 날개 달 듯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왕자하고는 친구 먹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반작용은 작용과 같이 세트다. 이세계는 권력이 모른 걸 지배한다. 귀족이 팥으로 메주를 쓴다면 팥이 메주가 되는 세상이다. 평민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그로 인한 엄격한 위계질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여기서 이번 8권의 진위를 잘 살펴야 한다. 그동안 놔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인의 고삐를 누가 잡았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세계에 대한 상식과 귀족에 대한 사고방식을 주입 시켰고, 몸이 허약한 그녀를 위해 약을 만들어 주고 적대 세력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준 존재가 있다. 그녀의 전생을 알고 있고, 그녀가 신문물을 만든다는 주체라는 걸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연막을 뿌렸던 존재.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엄격함을 보여주고, 때론 상냥함으로 아버지를 대신했던 존재. '페르디난드'는 그녀에게 있어서 부모 다음으로 의지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사실 페르디난드가 아니었다면 마인은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마인이 있었던 것엔 페르디난드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민 가족이 죽지 않게 손써줬고, 후원자로서 뒷배로서 그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커버를 해주고, 그녀를 적대하거나 노리는 자들을 제거도 해줬다. 이번 8권에서는 두 가지의 길이 나뉜다. 하나는 마인의 가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페르디난드의 가치다. 마인은 앞서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페르디난드는 귀족계에서 마법적으로든 머리로든 유례없는 실력자다. 음습함으로 정적을 무찌르고, 귀족원(귀족 사관 학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등 에렌페스트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든든한 보디가드가 없다. 반대로 적대 세력에게 있어서는 그만큼 눈에 가시가 된다.


지금 승승장구하는 에렌페스트와 마인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마인이 그동안 해왔던 작용의 반작용이 일어난다. 마인의 출현으로 그동안 에렌페스트에세 있어서 은 과일이었던 현 영주의 어머니 베로니카가 실각하고, 독단 전횡을 저질렀던 구 신전장은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동안 베로니카와 구 신전장에 붙어 꿀을 빨던 세력들은 마인의 출현이 달갑지 않을 것이고, 베로니카의 실각으로 권력마저 잃게 되었으니 현 영주(이제 와 쓰지만 현 영주는 마인의 양아버지다)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불만 세력 중에 진짜 베기라 할 수 있는, 현 영주의 '누나'도 있다. 누나는 옆 영지 '에렌스바흐'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실세'다.


자기에게 말도 없이 친애하는 어머니를 실각 시키고 또 친애(도를 넘은 거 같던데)하는 삼촌(구 신정장)을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누나의 억하심정은 말해 무얼 하리오. 이 모든 중심에는 마인과 페르디난드가 있다. 이 두 연놈을 가만히 두면 화병으로 죽을 판이겠지. 어머니를 실각 시키고 좋아하는 삼촌을 요단강 건너보낸 데다 자기(누나)가 시집간 영지보다 더 잘 살게 되었으니 배알도 꼬이고, 썩은 과일 베로니카의 제례라고 해도 좋은 누나로서는 당연히 두 사람과 에렌페스트를 손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간간이 복선이 투하되었고, 이제 회수만 남은 상태다. 우선 에렌페스트의 최대 전력인 페르디난드를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이다.


에렌스바흐, 정확히 누나는 에렌페스트를 하찮게 여기며 그동안 꼬봉 역할을 강요해왔다. 그런데 지금 위에서 언급한 꼴이 일어나고 있다. 마인에게서 페르디난드를 떼어 내고, 에렌페스트에서 페르디난드를 떼어낸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에렌페스트는 에렌스바흐가 적대세력이라고 인지는 하고 있지만 대비는 거의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 불어올 태풍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게 될 것이고, 마인에게 있어서 슬플 이별을 강요하게 된다. 이 모든 건 마인이 책을 만들기 위해 쫓아다닌 결과다. 책을 만들어도 나대지 말고 조용히 만들었다면 괜찮았겠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 곳을 들쑤시고 다녔으니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마인과 페르디난드의 마음이다. 수년을 같이 하면서 티격태격하고 알몸도 보여준 사이다. 원래라면 평민인 마인은 페르디난드를 감히 우러러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만 놓고 봐도 페르디난드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인은 의붓 오라버니의 약혼자다. 장차 의붓 오라버니가 영주가 되면 그녀는 영주의 제1부인이 된다. 그러니 페르디난드와 맺어지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애틋한 마음을 놓고 보면 둘은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아직은 그런 마음보단 가족으로서 가족애를 우선시하고 있다. 그것이 좀 안타까운 일이랄까. 이번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들 앞에 다리가 놓인다면 그 다리는 오작교가 될 것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 날 수 없게 되는 연인 사이를 이어주는 오작교, 언젠가 이들도 오작교에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다.


맺으며: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마인의 상식(사람은 평등)은 현실 지구에 맞춰져 있다 보니 행동도 거기에 맞춰지는 건 당연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만 그녀는 로마법을 따르지 않는다. 즉 책임을 지지 않는 마인으로 인해 주변은 늘 뒤처리에 골몰하게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 따른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는 것도 보여주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영지가 발전하는 건 사실이라서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불편한 동거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책만 만들 수 있으면 뭐든지 할 것이고, 책을 편안히 읽을 수만 있다면 평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니까 에렌페스트 입장에서는 계륵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이야기는 그런 책임회피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터져버린 이야기다. 그러나 마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아무튼 다음이 5부 시작인가 했더니 9권이 있다. 9권은 아마 에필로그 같을 테고, 5부부터가 마인이 저질렀던 행동에 대한 반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첨언하자면, 이 작품은 이전에도 언급했는데 결코 아기자기한 라노벨 특성에 맞는 작품이 아니다. 마법과 마수 등이 출현하는 판타지 계열의 라노벨 치고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는 현실적인 작품이다. 귀족과 평민의 관계라든지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교훈도 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세계 전생을 통한 신문물을 퍼트리는 이야기이긴 한데 세계관도 짜임새 있고 캐릭터 개개인의 성격과 지명 등 작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만 그걸 온전히 느끼게 해줘야 할 번역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 문맥이 이상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이걸 주제로 사이트가 개설될 정도인데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전엔 대사가 통째로 누락된 것도 있었다. 이번만 해도 불륜으로 애를 낳은 건지 왕족의 애인지 분간이 안 되는 번역은 정말... 출판사는 독자의 피드백을 뭐라 여기는지 고칠 의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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