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22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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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렌스와 호로에게 있어서 양아들이나 다름없었던 '콜'이 세상을 바로잡고자 길을 떠난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이들의 딸내미 '뮤리'는 미래의 서방님 콜을 쫓아가버렸고. 산중에서 온천 여관을 열어 여행과 여생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던 이들은 둘의 안부가 궁금하여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10여 년 넘게 행상을 그만뒀던 로렌스에게 있어서 여행은 새로운 만남 같은 두근거림은 없고 몸이 녹슬어 불도 못 피우는 구박데기로 전락해버리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다. 호로는 생각 날 때마다 놀려 먹기 바쁘고.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더니 이놈의 애시키들이 글쎄 세상을 뒤집어 놓고 있다. 콜과 뮤리는 교회를 개혁한답시고 벌집을 쑤셔 놓은 통에 가는 곳마다 그 영향권에 들어 있어서 골머리를 앓는 정도가 아니다.


이번에 그 뒷수습을 위해 이들과 마찬가지로 먼 길을 달려온 호로의 천적 '엘사'가 등장한다. 주근깨가 인상적이었던 원리원칙의 소녀가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로렌스와 호로는 교회의 의뢰를 받아 저주받은 산을 조사하기 위해 어떤 지방을 찾는다. 거기서 엘사와 맞닥트려 저주받은 산을 둘러싼 소문과 진실을 파헤쳐 간다. 엘사는 파견 나와서 쇠락해가는 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었고, 마을의 부흥을 위해 산을 팔아야 하나 세간엔 저주받았다느니 들어가면 돌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끊이질 않는 산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전전긍긍 중에 로렌스와 호로가 찾아온 것이다. 엘사에게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다만 호로에게 있어서는 늘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데다 골수 교회파인 엘사가 달갑지만 않다.


그야 호로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고, 인간이 아닌 자는 이단으로서 화형을 시키는 게 교회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사 깐깐하고 규칙과 검소함으로 살아가는 엘사와 반대로 술을 옆에 끼고 고기만 찾아대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호로가 어울릴 리가 없다. 그래도 엘사는 로렌스와 호로의 결혼식 때도 와줬고 십수 년 전에는 궁지에 빠진 엘사를 호로와 로렌스가 도와줬기도 해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원수지간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의 묘한 신경전이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라 하겠다. 어쩌면 엘사는 호로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호로에게 그녀는 마을에 가서 토끼 좀 받아 오라고 심부름 시키는 대목이 있는데 호로는 두말 않고 쪼로로 쫓아가서 받아온다. 평소엔 내가 왜?라는 게 호로의 성격이다.



호로는 살던 고향에서 쫓겨났다. 인간의 개발에 밀려 산이 황폐해지고 오염되고 더 이상 살 곳이 못되어 일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그 아픔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1부에 해당하는 17권까지의 여행이 그녀의 고향을 찾는 여행이었으니까. 그것이 눈앞에서 되풀이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산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다. 그 산은 철광산과 소금광산의 채굴로 황폐해졌고 채굴이 끝나자 산은 버려졌다. 마을이 쇠락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풀 한 포기 없을 거라는 생각에 찾았던 산은 어찌 된 일인지 녹음을 되찾고 있다. 질서 정연하게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산은 저주받은 산이라고 소문난 산이다. 들어간 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토리'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자신이 살던 산이 황폐해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을 때의 고통은 누구보다도 호로가 잘 알고 있다. 이 산에는 다람쥐가 살고 있다. 다람쥐는 사람이 아닌 자다. 우직하게 사람들이 떠난 곳을 지키며 나무를 심어왔다. 다람쥐는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호로는 가슴이 더욱 먹먹해진다. 그런데 지금 엘사는 이 산을 팔려고 한다. 팔아야 마을이 굶어죽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말석을 차지하는 그녀로서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 로렌스와 호로는 산이 왜 저주받았다고 소문이 났는지, 들어간 자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소문이 도는지 알아간다. 거기엔 호로보다도 더욱 기구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다람쥐는 떠나간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60념 넘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호로에게 로렌스가 있듯이 다람쥐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다람쥐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우직하게 황폐해진 산을 가꿔왔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자들 중에는 현명한 자들이 많다. 시간의 흐름은 똑같지 않다는걸, 호로는 이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이다. 산을 팔아야 마을이 산다. 산에는 다람쥐가 있다. 언젠가 돌아와 줄 사람을 기다리며 지금도 우직하게 산을 가꾸고 있다. 이것이 플러스가 되어 산은 좋은 값에 팔릴 거라 한다. 로렌스는 다람쥐가 떠나지 않으면서 산을 팔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호로가 떠나라고 하면 다람쥐는 떠날 것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다른 산에 가서도 기다릴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정말 가슴이 아려와서 못 읽을뻔했다. 자, 로렌스는 서로가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 열쇠는 호로에게 있다.


도토리 빵이 나온다. 다람쥐가 선물한 어마어마한 양의 도토리를 받아 어찌할 수 없었던 엘사는 갈아서 빵을 만든다. 호로는 질색을 한다. 이게 또 여간 웃긴 게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다람쥐는 호로에게 없는 것이 있다. 그래서 호로의 기분은 언짢아진다. 둘이(호로와 다람쥐) 처음 만났을 때도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자신들을 훔처보고 있는 다람쥐를 물어다 로렌스 앞에 내려놓는 거라든지, 늑대 모습의 호로에 쫄아서 머리를 땅에 박고 안절부절 못하는 다람쥐가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호로는 다람쥐를 도와주려고 한다. 쫓겨나버린 자신의 과거를 다람쥐에게서 보게 된 그녀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다람쥐가 비록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맺으며: 긴 시간을 살아가야 되는 자들의 회환을 그리고 있다. 18권부터 줄곧 이래왔지만 이번 에피소드는 유독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알면서도 마치 인정하면 모든 게 끝나버릴 거 같은, 호로는 다람쥐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 매일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호로를 보고 있으면 쓸쓸한 기분이 들곤 한다. 작가가 이런 부분에서 표현력이 좋다고 할까. 아무튼 엘사에게 기를 못 피는 호로도 재미있고, 천진난만한 다람쥐에게선 힐링이 되는 어리바리와 이별의 아픔이 동시에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외전에서 개들의 왕이 된 뮤리의 활약도 볼만하다. 부모가 찾으러 온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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