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의 까마귀 2 - J Novel Purple
시라카와 코우코 지음, 아유코 그림 / 서울문화사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동양풍 다크 판타지, 역하렘


표지: 이번 이야기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다. 부엉이는 오련낭랑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고, 까마귀는 오련낭랑을 형상화한 이미지다. 그 중간에 수설이 끼여있다. 이번 2권에서 제목의 까마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진다.


2권 줄거리: 나라의 시조 오련낭랑과 그 시조를 모시는 오비의 진짜 정체가 드러난다.


포인트: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 뒷일을 책임질 수 없다면 아무리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서지 말자. 그렇다고 몰인정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라면 112나 119에라도 신고해줘라.


특징: 동양풍 사극과 서양풍 공포물의 절묘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특대 스포일러 주의

 



어디로 걸어가야 될지 모르는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은 다른 이들과 같이하는 걸 허락되지 않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이 몸, 이정표를 들려주던 사람은 있었다. 이 길을 쭈욱 가면 된다고 했던 사람,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수설'은 언제나 혼자서 걸어왔다. 앞으로도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겠지. 이제 와서 외로움이 있을까 보냐. 자신도 언젠가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받은 이정표를 누군가에게 물려줄 날이 올까. 문득 하늘을 보니 비가 내린다. 우산을 가져오는 걸 깜빡했다. 비를 피할 곳은 없다.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오비'란 그런 존재다. 인생에 있어서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비에게 있어서 이런 바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황제 고준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했다. 우산을 씌워주고자 했다. 벗의 맹세를 하고, 커플링까지 하며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데 부단한 노력을 한다. 수천 명이나 되는 후궁이 있으면서 고준은 왜 수설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황태후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은인이니까. 권력을 바라는 후궁의 외척(외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고준에게 있어서 수설은 안식처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보다 오비로서의 운명을 안고 가야만 하는 수설이 가여웠으리라. 오비는 오비로 선택된 순간 자신의 바람과 다른 운명을 살아가야만 한다. 평생을 후궁에 갇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다. 황제의 승은은 금기시나 다름없다. 그런 삶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없겠지. 거기에 나라의 시조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로서의 고초도 있다.


수설은 자신의 행동에 고뇌를 되풀이한다. 고통을 받는 이가 있어서 무심코 손을 내밀었더니 구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시녀' 구구와 '홍교'는 그렇게 수설에게 구출이 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 두 시녀를 거둬들인 건 좋으나 원래 오비는 혼자서 살아가야 될 운명이다. 그렇게 살다 후대에게 오비의 능력을 물려주고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진다. 이 나라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오비란 그런 존재다. 오비는 그 비밀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거기에 수설은 전(前) 황조의 자손이다. 지금의 황조는 전 황조의 피의 비를 뿌린 끝에 거머쥔 자리다. 정체가 들통나면 수설 또한 성치 못할 것이다. 다행히 고준이 전 황조의 자손을 뿌리 뽑는데 제동을 걸어줘서 한시름 놓았긴 하다.


아무튼 수설은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배우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는 정(情)이 많다. 입은 구시렁 거려도 도움을 바라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게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라고 해도. 그렇게 또 한 사람이 수설의 곁에 서게 된다. 이것으로 인해 구원받는 사람은 있다. 정작 자신(수설)은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걸 알고 있기에 고준은 그녀를 무척이나 신경 써준다. 어느덧 수설의 마음에 고준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매일 먹을 것을 들고 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아무리 오비라지만 힘은 한계가 있기에 고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러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겠지. 이놈, 저놈 거리며 황제의 위엄은 개나 줘버린 듯한 입놀림을 해도 소꿉친구 대하듯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고준을 미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정립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오비란 시조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다. 대대로 후궁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오련낭랑의 넋을 달래주는 존재다. 그래서 오련낭랑과 제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오련낭랑의 존재는 무엇일까. 사람 얼굴에 몸은 까마귀라고 한다. 그래서 오비의 차림새는 까마귀에 가깝다. 작중에서 오련낭랑은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신(神)은 죽지 않는다. 그럼 그 신(神)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이 작품의 최대 흥미 포인트이다. 수설과 고준의 관계는 그다음이다. 왜냐면, 오비 아니 수설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게 오련낭랑이기 때문이다. 오련낭랑은 신(神)이다. 하지만 신(神)은 아니다. 그렇게 떠받들여지고 있을 뿐. 이번에 오련낭랑의 정체가 밝혀진다. 오비란 태초 나라가 건국될 때 오련낭랑관 관련된 사건의 피해자다.


그 오련낭랑을 찾아 누군가가 온다. 사태는 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수설은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대항하나 수세에 몰린다. 그때 고준은 몸을 날린다. 작중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수설의 머리엔 '왜?'라는 말이 떠올랐으리라. 처음엔 밉상스러운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매몰차게 대해도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으며 찾아와줬다. 먹을 것을 내주고, 수정을 깎고 나무를 깎아 노리개를 만들어 줬다. 벗이라고 말해줬다.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수설에게 있어서 어느덧 우산을 받쳐주는 이가 생겼다. 오련낭랑을 모시며 편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태초 1대 오비가 저지른 정신 나간 짓은 후대 오비들을 올가미에 몰아넣었고, 수설 또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누설이 용납되지 않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도, 자신의 핏줄에 대해서도, 편한 날은 없었다. 그런 때에 고준은 자신의 짐을 덜어주고 몸을 날려 자신을 지켜 주었다.

 

오련낭랑은 여기에 있다. 오련낭랑은 신(神)이 아닌 죄인이다. 오비의 정체는 무엇이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무엇일까. 오비로서의 생활만을 해온 수설에게 있어서 시녀들과 고준이 끼친 영향은 크다. 영원히 동토로 남을뻔한 자신의 마음에 햇빛을 비춰주고 있다. 싫지만은 않다. 한편으로는 오비로서의 책무도 다해야 하는 고뇌도 있다. 그러나 지켜야 될 사람이 늘어갈수록 수설은 오련낭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넘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햇빛을 비춰주는 이들이 오히려 수설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수설)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면 쓸수록... 사람과 인연을 맺는데 서툴기 그지없는 수설에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다. 그때 웃으며 이별을 할지, 아니면 모두의 힘을 합쳐 헤쳐 나갈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맺으며: 수설을 향한 황제 고준의 애틋한 마음이 많이 묻어나는 에피소드입니다. 후궁을 많이 거느린 황제 입장에서 오비만 신경 쓰는 부분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고준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아무튼 오련낭랑의 정체와 오비의 임무에 대해 밝혀지면서 이보다 부조리한 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수설은 그 피해자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그리고 오비가 단명한다는 것도 밝혀졌고요. 이로써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수설의 핏줄에 대해 고준은 알게 되었고, 오비라는 직책과 핏줄로 인해 이들이 맺어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번 이야기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