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하극상 제4부 귀족원의 자칭 도서위원 4 - 사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V+
카즈키 미야 지음, 시이나 유우 그림, 김봄 옮김 / 길찾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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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귀여운 맛으로 보는 작품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작가도 알고 있는지 2년이나 잠에 재워 나름대로 아직 어리고 귀여운 '마인'이라고 어필은 하려고 하는데 그런 것치곤 일을 너무 방대하게 넓혀놔서 귀여운 맛은 하나도 없고, 자기 취미 살리려다 기업을 만들고 나아가 자회사를 잔뜩 거느린 대기업을 운영하는 어린 CEO만 있습니다. 책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사업은 이제 나라 전체가 들썩 거리는 대규모 사업이 되어 버렸군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책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다 유괴 당할뻔하고, 그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음에도 그녀(마인)의 돌진력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어요. 온 동네를 쑤시고 다니니 영주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을 터, 그녀가 영지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버린 영주 질베스타는 그녀를 양녀로 들이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어쨌거나 귀족이 되었으니 당연히 따라붙는 게 있죠. 바로 정략결혼, 책을 만들려면 종이가 있어야 하는데 양피지가 대세인 이 시대에 종이는 매우 희귀한 물품이었죠. 이걸 대량 생산하면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는데 옆집, 뒷집, 아랫집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종이만이 아니고 샴푸와 머리장식 등 그녀가 가진 특허(?)의 가치만 해도 우리나라의 S모 전자만큼이나 돈을 잘 버는데 이거 여자아이에다가 아직 어리네? 게다가 귀족원이라는 귀족들만 가는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이거 천재 아님? 앞뒤 분간을 못하는 특성을 살려서 왕자하고도 친구 먹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왕족만 기동 시킬 수 있다는 도서실 그 뭐냐 토끼 인형 두 마리도 깨워 버리는 마력 하며(1), 그녀를 차지하면 천하를 손에 넣는 거나 다름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자, 에렌페스트(마인이 살고 있는 영지)에게 있어서 그녀를 다른 영지에 빼앗기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거지꼴 못 면하던 영지를 그녀를 이용해 기껏 일으켜 세웠는데 다시 거지꼴로 돌아가겠죠. 그래서 그녀의 이복 오빠(배다른 남매가 아닌 입양을 통한 남매지간)인 '빌프리트'와 결혼 시켜서 그녀를 붙잡겠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이 '빌프리트'가 허당이라면 좋은 말이고 나쁜 말로 하면 사기당하기 딱 좋은 성격이라는 겁니다. 내 인생에 오토는 없고 온리 수동만이 존재한다는 신조에 따라 클러치를 밟아대며 기어를 바꾸기는 하는데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 2단으로 바꿀까? 3단으로 바꿀까?라고 매번 물어보고 정한다는 신기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란 말이죠. 할머니에게 마마보이(여기선 할마보이라고 해야 하나)로 키워져 내가 정해는 것보다 남이 정해주는 인생을 사는 참으로 안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어린애가 주인공이고 책을 만든다든지 표지가 파스텔톤 밝은 분위기라고 내용도 밝을까 했다간 큰코다칩니다. 마법이 나오는 판타지 성향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귀족 상하 관계도 그리고 있어서 사람 죽어 나가는 게 우습게 그려지는데요. 정변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숙청을 당하고, 마인이 관할하는 신전을 공격했다가 마을 전체가 소멸할뻔하는 등 귀족 신경을 건드리면 죽는 걸로 끝나지 않는 그런 분위기도 있어요. 귀족들 노리개가 되는 고아들이 나오고 그 귀족들의 아이를 임신해서 고아원에 들어와 낳게 하는 추악한 일면도 가지고 있죠. 정략을 위해선 어린 애도 거래에 동원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번에 마인을 어떻게든 빼앗기 위한 다른 영지에서의 물밑 접촉이 그예죠.

 

그러나 마인은 그런 거는 안중에도 없고(불쌍한 페르디난드) 오로지 책만을 바라보면서 종이를 만들기 위해 영지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생산에 열을 올리고 나아가 염색에까지 손대는 등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그래서 이젠 마인이 보여주는 귀여운 맛은 없어져 버렸죠. 있는 건 종이라는 돈에 환장한 CEO 밖에 없어요. 그것을 위해선 권력을 동원하는 걸 마다하지 않으며 주변에 일을 떠넘기고 자기는 책만 보는 악녀 같은 모습도 보이죠. 그런 성격을 고칠 생각도 없답니다. 하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조금은 어리광이랄지 꾀를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으니 조금 농땡이 피운다고 벌은 받지 않겠죠. 자기가 판 무덤이지만. 그러데 그 무덤에 무덤을 판 본인이 안 들어가고 엄한 사람들이 발을 담그기 시작합니다. 우리 영지에도 종이와 샴푸 좀 주세요? 

 

그건 그렇고 5부의 테마가 전쟁이라서 그런지 '아렌스바흐'에서 사전 작업이 시작되는군요.

 

맺으며, 이 작품의 주제가 종이와 책 만들기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현실 같으면 노동법 위반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노가다를 애한테 엄청 시켜 대는군요. 노다지 뭘 만들기만 합니다. 그렇다 보니 극 초반 아기자기한 맛이 다 없어져 버렸어요. 현실에서도 이 정도였다면 아닌 게 아니라 S모 전자라는 기업을 몇 개는 세웠을걸요. 주구장창 그런 이야기만 들어가 있으니 재미있을 리도 없고, 어디서 감동을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더군요. 이거 완전 치즈를 못 만드는 유목민에게 치즈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실패는 좀 하지만 시행착오도 없이 잘만 해대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할지. 더욱 문제인 것은 오타는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오역은 아니잖아요. 79페이지에서 어떤 물품이 외부로 반출된 역사가 없는데 마치 반출이 되었다는 식으로 '왜 돌려주지 않았는지 깨달았다'라니요. 아니 역자 양반 물건이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글을 제대로 보고 번역한 건가요.

 

침대 가리개를 천막(쉽게 말해서 노점상에 치는 그런 천막)으로 오역을 그것도 끝까지 천막이라니 모르면 검색을 해서라도 알아보던지, 오타는 있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읽다 보면 허용 한계량을 넘어섭니다. 위에서 보석이라고 해놓고 아래는 보물(보물이 맞는 단어)이라고 하질 않나, 오타는 하도 많아서 세다가 그만뒀군요. 그리고 가장 빡치는건 문단 누락이군요. 84페이지 귀색을 언급하면서 '바람 속성 빨강'이 누락되고, 139페이지에선 마인의 대사 중 한 문단이 아예 빠져 버렸습니다. 203페이지에선 자료가 불충분해서 확실하지는 않은데 성의 지하라는 부분은 지하가 아니라 정황상 아랫마을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무리 마법이 있다지만 성 지하에다가 겨울을 나기 위해 영지 사람들을 떼로 몰아넣어서 질식사 시킬 일이 있는지. 이건 누구 잘못일까요. 역자가 잘못한 건지 검수를 안 한 출판사 잘못인지. 이 정도면 역자를 체인지 시켜야 함에도 왜 바꾸지 않는 걸까요. 클레임도 엄청 들어간 거 같은데...

PS: 이건 순수하게 필자가 신경 거슬려서 하는 말인데 굳이 약혼이라는 말을 놔두고 혼약이라는 단어를 써야 했을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혼약이라는 단어도 있는 거 같으니 혼약도 틀린 표현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아무튼...​ 


 

  1. 1, 정확히는 마력만 있으면 누구나 기동시킬 수 있지만 소유권이 왕족에게 있어서 깨우는건 왕족만이 할 수 있다는 뭐 그런게 있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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