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향신료 19 - Extreme Novel
하세쿠라 이스나 지음, 아야쿠라 쥬우 그림, 박소영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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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다지고 시작했던 삶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맺어진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어느 한쪽은 반드시 남겨지게 마련이거든요. 엘프와 인간, 마족과 인간, SF적으로는 안드로이드와 인간, 한때 이런 주제로 한 작품이 유행하기도 했죠. 지금도 잊지 못하는 건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맺어진 영화의 결말이군요. 언제까지고 주인공의 곁을 지키는 안드로이드, 그가 늙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해도 언제나 젊음을 유지한 채 그의 곁을 지키며 끝나는 장면은 많은 여운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물음을 던져 주었죠. 과연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종족끼리 맺어져도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로렌스와 호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수백 년을 살아온 호로에게 있어서 인간인 로렌스가 가진 시간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죠. 그걸 알면서도 맺어진 것은 축복해 마지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남겨지는 반려와 자신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삶, 그것이 눈에 보일 정도면 애틋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할 수 있죠. 이번 에피소드는 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를 준비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둘은 처음부터 각오를 했기에 시간이라는 벽에 몸부림을 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가 외로움에 삼켜지지 않게 하기 위해 로렌스는 무언갈 준비해갑니다.

 

외로움이라는 단지에 행복이라는 뚜껑이 덮여 있습니다. 지금은 로렌스와의 시간이 마냥 행복하지만 언제까지고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호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극단적으로 무서워하죠. 수백 년을 보리밭에 매어져 지내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까먹어 버린 그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들과 초토화된 고향 그리고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은 그녀에게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을 각인시켜버렸습니다. 그런 그녀는 로렌스를 만나 그 외로움을 단지 속에 봉인하고 행복이라는 뚜껑으로 덮어 감춰 두었었죠.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외로움이라는 독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로렌스)와의 추억을 하나라도 더 쌓기 위해 이벤트를 만들려고 하지만 고즈넉하고 세상 풍파와는 거리가 먼 온천마을에서 이렇다 할 이벤트꺼리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때 마침 뮤리와 콜이 떠나고 일손이 부족해진 '늑대와 향신료(로렌스가 세운 온천장)'에 일전에 남방에서 올라온 늑대 무리 중에 '세림'이라는 젊디젊은 여자 늑대가 종업원으로 찾아옵니다. 이에 호로는 혹시나 로렌스가 바람이라도 피우면 투닥거려 추억이라도 쌓을 텐데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버리는데요. 초조해지는 마음, 언젠가 분명 그와의 추억은 풍화되어 사라질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로는 점점 애가 타들어가죠.

 

어쨌건 이런 분위기는 줄곧 있어온 것이고 이번 에피소드는 그걸 확인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준비에 들어가죠. 내가 먼저 떠나도 남겨진 사람이 외로움에 먹히지 않도록, 그걸 옆에서 담담히 거들어주는 호로, 외전 두어 개 빼고 줄곧 이런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다만 호로의 애틋한 마음은 구구절절한데 로렌스가 행상을 하며 돈에 눈이 어두워 발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들이밀었다가 된통 당하고 호로에게 구해지고 그러는 장면은 없기에 조금은 무미건조하게 다가오긴 합니다. 하지만 남겨지는 쪽인 호로가 다시금 몰려오는 외로움을 표현하는 장면은 애달프게도 합니다.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17권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결말인데 이렇게 굳이 표현할 필요가 있었나 싶더군요. 이런 장르의 결말은 좋게 끝나지 않습니다. 남겨지는 한쪽은 분명히 슬픈 결말일 테니까요. 그걸 반증하듯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식 준비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예전 지금은 없는 로렌스와의 여행을 추억하는 광고 문구인지 시놉시스인지를 읽었던 기억 때문에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 먹먹했습니다. 하지만 외전에서 뮤리가두 마리에게 씨름 시키는 장면은 좀 유쾌하긴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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