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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고기 비린내. 처음부터 끝까지 고기 비린내가 가득하다. 소설 전반을 관통하여 요약하는 하나의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면 바로 이 비린내이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비위가 상해서 몇 차례의 시도 끝에서야 가까스로 책을 넘길 수 있었다. 오리 먹이로 줄 돼지고기를 삶는 행위, 그리고 그로부터 자연스레 도출되는 모종의 유쾌하지 않은 상상. 양자는 비린내라는 명료한 후각적 심상으로 매개된다. 근래 이토록 강렬한 감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있었나 싶다.
자극되는 것은 후각만이 아니다. 지칠 줄 모르고 등장하는 헝가리식 비프 스튜 '굴라시'는 또 어떠한가. 굴라시는 주인공이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잘 하는 요리로, 소설 전반에 걸쳐 주요 장면에서 반복해 등장한다.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모두가 둘러앉아 굴라시를 맛본다. 문제는 주인공의 현 남편 차은호가 이 요리를 맛있게 먹어왔다고 소개되며, 실제로 주인공이 만든 굴라시가 꽤나 맛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미각적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소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데, 결과적으로 그 자극은 본능적인 차원에서 올라오는 끔찍함과 역겨움으로 귀결된다. 살육자가 살육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그 요리는 모두에게 익숙한 감각적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잔혹함과 쾌락은 불가분적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잔혹함과 쾌감을 느끼는 주체는 비단 살육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독자는 살육의 방식이 곧 생존의 방식이고, 생존의 방식이 곧 살육의 방식임을 자각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역겨움의 근원인 셈이다.
고기 비린내라는 문학적 장치는 소설 전반에 걸쳐 쾌와 불쾌, 미와 추, 행복과 불행, 가상과 현실을 영리하게 교차시킨다. 후각과 미각을 거쳐 메타적 상상이 장이 열린다. 독자는 이야기 자체의 쾌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쾌감을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불길한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는 취재로 얻을 수 있는 구체적 사실과 사건에 대한 핍진한 묘사만큼이나 유의미하고 인상적인 성취이다. 플롯 자체가 선사하는 스릴이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을 집착과 강박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주인공이 딸에게 '신처럼 군림한다'는 묘사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방해물을 선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행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주인공에게 일종의 신앙과도 같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딸과 자기 자신을 신도로 삼는 교주로 추앙된다. 강박은 언제부터 신앙이 되며, 신성함과 불경함은 어떻게 피학과 가학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는가. 지유의 구원, '이모'의 존재는 드물게 주어지는 생경한 행운이다.
소설 첫머리에서부터 특정 사건을 모티프로 하였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고, 저자 또한 이를 숨기지 않는다. 여러모로 위태로운 시도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작품 안에서 현실과 닮은 듯 닮지 않은 새로운 현실이 창조된다. 저자는 이야기의 모티프와 그 이야기 자체를 구분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결국 '완전한 행복'은 완전한 모순에 다름 아닌데, 이 모순은 관념이 아닌 생생한 감각의 차원에서 강한 몰입감과 함께 경험된다. 감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를 선사하는 것, 이는 특정 사건이 제공한 모티브로부터 저자가 발전시킨 독자적인 성취이다.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마녀 선생'이라는 식의 설명은 몰입을 다소 방해한다. 여성의 악함과 약함이 반드시 히스테리와 결합되어야 할 어떠한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작가의 고충과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인물에 대한 묘사가 특정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할 때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은 급속도로 납작해지며 재미는 반감된다. 정유정의 작품이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이야기에서도 통속적 클리셰에 기대지 않는 새로움을 꾸준히 선사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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