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마 행려 세계문학의 숲 46
잭 케루악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 레이를 따라 등반을 하고 대륙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고, 자연 속에서 무위하고, 파티와 놀이, 끊임없는 불교적 대화 가운데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줄거리와 사건보다는 '즉흥적인 재즈' 같은 소설인 것이다. 그 문장의 리듬 가운데 떠 있다 보면 여행 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뜻밖의 아름다운 풍경과 같이 시원한 문장의 줄기를 만나게 된다. 시적인, 내면에 가닿는. 얽혀 있고, 한군데 정주하기 위해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보면, 이 책을 읽으며 레이와 제피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레이도 자유로워 보이지만, 제피는 붓다와 같이 자기 확신 속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기 망상에 빠져 결국 죽고 마는 '로지'와 히치하이킹에서 만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에서 레이가 제피를 동경하고, 붓다를 꿈꾸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에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 속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들. 혹은 사회적 룰과 안정이 최고의 가치인 양 길들여져 사는 삶. 레이는 그 둘 모두를 거부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걷고, 산을 타고, 자연속으로 들어가고, 자기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꿈꿀 수 있다. 이 세계는 금빛 산이고, 붓다라는 걸.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아직 벗어나지 못했을 뿐, 붓다라는 걸. 진정한 자유에 대해 적어도 꿈이라도 꿀 수 있다는 걸. 이 생이 얼마나 새롭고 감각적인지, 세상 앞에 알몸으로 서서 괴롭고 힘들지라도 절대로, 자유를 포기해서 안 된다는 걸.

 

난 한 해 동안 죽 금욕을 지켜오던 중이었고, 그 밑바닥엔 욕정이야말로 탄생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탄생은 고통과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란 생각이 있어, 정말이지 거짓말 안 보태고 욕망을 불쾌한 것, 심지어 잔인한 것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48쪽

 

"스미스, 난 섹스를 폄하하는 어떠한 불교 종파도, 어떠한 종류의 철학이나 사회 시스템도 믿지 않아." -49쪽

 

"그 따분한 이상이나 섹스에 대한 억압들, 음울한 신문들과 진정한 인간의 가치들에 대한 칙칙한 검열들, 그러다 불교와 이 모든 것들에 눈을 떴을 때, 순간 내가 엄청나게 오래 전에 전생을 살았으며 그때 저지른 잘못과 죄 때문에 좀 더 슬픈 세계로 강등되어 이 미국이란 곳에 태어났다는 것,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채 그 어느 것도 믿지 않고, 특히 자유를 믿지 않는 자들의 땅에 태어난 것도 내 업이라는 걸 알았어. 그게 바로 내가 북서부의 무정부의주의라든가 에버렛 학살 때의 옛 영웅들 같은, 자유를 위한 운동들에 공감을 갖고 잇는 이유이기도 하지...." -50쪽 51쪽

 

"겨울 아침이면 옷을 벗든 입든 모든 일을 모닥불 앞에서 했고, 또 그래야만 했지, 내가 옷 벗는 것에 대해 너랑 관점이 다른 건 그래서야. 내 말은 그러니까. 별로 부끄럽거나 그렇진 않다는 거지."

-60쪽

 

숲이 그렇지 않은가, 친숙하면서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어떤 것의 느낌, 오래전에 죽은 친척의 얼굴이나 오래된 꿈, 물에 떠내려온 잊혀진 노래의 한 소절, 무엇보다 과거의 어린 시절 혹은 과거의 어른 시절, 백만 년 전에 있었을 그 모든 삶과 죽음과 고통을 아우르는 금빛 영원의 느낌, 머리 위로 구름들이 흘러갈 때면 마치 그런 느낌을 (구름들 특유의 고독하며 친숙한 모습으로) 증명하는 것 같다.-93쪽

 

"이런 등반의 묘미란, 꼭 선(禪)과 같다는 거야."-97쪽

 

"그래 맞아, 알겠지만 나한테 산은 붓다야. 그 인내심을 생각해봐, 수백 수천 년 동안 말없이 한자리에 앉아 완벽하고 고요하게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 같잖아, 우리가 이 온갖 초조하고 바보 같은 짓거리를 멈추길 기다리면서 말이야." -100쪽

 

깊이 명상에 드니, 산들이 정말 붓다이자 우리의 친구들처럼 느껴졌고, 거대한 계곡 전체에 오직 세 사람밖에 없다는 건 참 희한한 일이라는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104쪽

 

아름다웠다. 분홍빛이 사라지자 주위로 온통 보랏빛 땅거미가 내려앉았고, 침묵의 포효는 마치 우리의 청아한 귓전을 통과하는 다이아몬드의 파도 소리 같아, 한 인간의 마음을 천년은 누그러뜨려줄 것 같았다. 나는 제피를 위해서도 기도했는데, 미래의 안녕과 행복, 최종적으로 도달할 불성을 위해 기도했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진지했고 완벽하게 환각적이었으며, 완벽하게 행복했다. -105쪽

 

침묵은 금빛 산이라.-106쪽

 

운전사 얘기가 자기는 체로키 인디언이지만 이름은 뭐라더라 존슨인가 알리 레이놀드인가 아무튼 그런 거였는데, 얘기를 하면 꼭 이런 식으로 시작했어. '이봐, 내가 우리 어머니네 오두막을 떠나왓을 때, 자네는 강 냄새도 맡기 전이었을걸, 혼자 서쪽으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아 텍사스 동부의 유전 지대로 왔다고.' 이건 뭐, 온갖 리듬으로 얘기하는데, 리듬에 맞춰 클러치와 기어들을 꾹꾹 밟아대고, 트럭은 들썩이지, 시속 70마일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데 꼭 자기 얘기가 잘 풀리 때만 그렇게 밟더라고, 대단했어, 그게 바로 내가 시라고 부르는 거지.-110쪽

 

강 옆의 다리 위에서 들려오는 트럭들의 굉음만 빼면 멋진 곳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정맥염도 살짝 안 좋아진 것 같아 5분 정도 물구나무서기를 해보았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이 날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러나 그 상황은 우습기보다는 어딘가 애처로운 것이었고, 갑자기 정말로 슬퍼지면서, 전날 밤 그 무시무시한 안개와 철조망이 있었던 상업도시 엘에이의 외곽에서 그랬던 것처럼 울 뻔했다. 집 없는 이에게는 어찌 되었든 울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 세상 모든 것들이 그를 향해 날을 세우고 덤벼들기 때문이다. -175쪽

 

그들은 내가 뭐 하는 인간인지 결코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182쪽

 

"난 오하이오에서 엘에이까지 이 트레일러를 몰고 왔다 갔다 하며 인생이나 죽이고 있죠. 아마 당신이 그렇게 떠돌이로 평생 쥐어본 것보다 많이 벌 거요. 하지만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있고, 직업도 큰돈도 없이 잘해내고 있잖소. 자, 누가 더 현명한 거요? 당신 아님 나?" 그에게는 오하이오에 멋진 집과 아내와 딸, 크리스마스트리와 차 두 대, 차고와 잔디, 잔디 깎는 기계까지 있었지만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해 그 무엇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건 진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란 뜻은 아니었던 게, 그 역시 대단한 사람이었고, 난 그가 좋았고 그도 날 좋아했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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