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대에 시공사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성곤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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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난 그의 책을 대부분 읽어보지도 않고

그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의 책 제목들을 대부분 아니까.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여주인공도 아니까.

하지만 까놓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는 단 한번도 그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노인과 바다>>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조금 궁금해졌다. 헤밍웨이는 왜 자살했을까. 그가 자살한 건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어서 그닥 의구심이 생길 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의 의구심을 가지기로 하고 그의 책을 초기작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친절하게도 시공사에서 최근나온 헤밍웨이 선집이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헤밍웨이는, 잘생긴 미국인이다. 그리고 다수의 전쟁에 참전했고 안 봐도 마초일 거 같았다. 여자를 좋아하고 사냥을 좋아하니까. 여하간, 이런 편견 혹은 배경 지식 속에서 나는 그의 첫번째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책이 있다. 술술 국수처럼 잘 넘어가는 책과 마른 오징어처럼 꼭꼭 씹어 삼켜야 되는 책. 헤밍웨이의 문장은 국수 같은 느낌이 강하다. 잘 끊어지고, 쉽게 넘어간다. 그 매끄러움은 손쉽게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1924년, 겨우 25살의 헤밍웨이가 낸 단편집으로 본격 소설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단편적으로 끌어 모은 글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것 역시 독자의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 작품집 속에 등장하는 같은 이름의 주인공 '닉'은 헤밍웨이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지점이 여럿 눈에 뜨인다.

 

이 작품집의 첫번째 소설 <스미르나의 부두에서>는 한 병사가 전쟁 중의 일들을 직접 술회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장 고약한 건,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들이었어. 그들은 절대 죽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죽은 아이를 엿새 동안이나 안고 있는 엄마도 있었어." "바로 그 순간, 노파가 죽어 뻣뻣해지는 거야. 허리 아래로 다리가 오그라들더니, 완전히 경직돼버렸어. 마치 어젯밤에 죽은 시체처럼." "그리스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 철수할 때 그들은 물건을 실었던 짐승들을 데려갈 수가 없어서 앞다리를 꺾은 다음 옅은 물에 빠뜨렸어. 그래서 앞다리가 부러진 노새들이 물에 빠져 떠다니고 있었지. 그건 정말 유쾌한 일이었어."

이 짧은 전쟁에 대한 진술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대단편소설의 형식을 갖추었다 말하긴 어렵긴 해도 강렬한 인상으로 이 책의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헤밍웨이의 육성이 담긴 전쟁에 관한 진술은 단편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한 장씩 삽입되어 이 책에 그 시절의 헤밍웨이가 지나왔을 심리적, 시대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디언 캠프>는 주인공 닉이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여자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배를 타고 조지 삼촌, 아버지, 두 명의 인디언과 함께 닉은 현장에 도착한다. 며칠째 난산 중인 인디언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고, 여자가 누워 있는 간이침대 2층에는 그녀의 남편이 누워 있다. 남편은 일하다가 도끼에 발이 심하게 찍힌 상태였다. 아버지는 잭나이프와 낚싯줄로 수술을 끝냈고 2층에 누워 있는 남편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면도칼로 귀에서 귀까지 자르고 자살했다. 어린 닉은 그 모든 걸 지켜본다. 돌아오는 배에 앉아 닉은 묻는다. "죽는 건 힘든가요, 아빠?" "아니. 아주 쉬울 거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배는 물 위를 떠가고 언덕에 해가 떠오른다. 닉은 물살에 손을 넣고 "싸늘한 아침 기온 탓인지 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라고 진술한다.

이 작품은 이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인상.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강물처럼 부드럽게 어린 닉을 매혹한다.

 

<의사와 의사의 아내> <무언가의 종말> <사흘간의 폭풍> 등은 단편적인 일화들을 다루고 있다. 대가의 초기 드로잉 같은 이 작품들은 부담없고 가벼워서 미묘한 감흥을 전해주고는 휙, 사라져버리는 이야기들이다. 그에 비하면 <권투선수>는 '애드 프랜시스'라는 왕년의 권투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초상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 1,2>는 주변이 폐허가 된 강에서 닉이 낚시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뚜기를 미끼로 송어를 잡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낚시 장면뿐이다.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힌다. 이 작가가 정말 낚시 이야기만 하고 싶었구나 하고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대의 낚시란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헤밍웨이 초기 작품집인 <<우리들의 시대에>>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생 자체를, 살아가는 그 자체를 담아보고자 한 결실이라는 것이다. 아주 젊은 작가가 있다.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는 상처투성이이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답다. 그는 자신의 생의 일부를 그 퍼득이는 강물 한줌을 손바닥에 떠서 있는 그대로 종이 위에 쏟아붓는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시대에>>를 이루고 있는 전부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때로 책을 권하면서 어떤 유익과 교훈, 의미를 남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읽는 것 자체가 "숨쉰다는 것, 산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느끼게 해줄 때가 있다. 헤밍웨이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책, 그의 숨결을 더 느끼게 만들고 싶은 책 <<우리들의 시대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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