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날고 싶다
김종일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3월
평점 :
정오의 싸이렌이 울린다. 주인공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일어나 외치고 싶어진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의 소설 '날개'에 등장하는 그 나약한 주인공은 과연, 다시 날았을까? 훨훨 날아서 자신의 비정상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을까?
여기, '나는 날고 싶다'를 외치는 한 소년이 있다.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에게 버림 받은 소년, 친척집에 엊혀 살며 갖은 구박을 받아오다 가출을 하게 되고, 구두닦이 패의 일원으로 찍쇠 일을 하게 된 소년, 종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종수의 날개짓은 이상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날개짓과는 좀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그들이 두 발로 땅을 박차고 힘껏 날아오르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단순히 '지금, 여기'에서의 탈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얽매고 있는 것의 실체가 보다 복합적이고 심오한 것들이라는 점에선 비슷해 보이기도 하나, 분명히 다른 점도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상의 소설에서의 비상이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라면, '나는 날고 싶다'에서의 비상은 주인공 종수와 주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것이며, 보다 현실적인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는 이상의 그것과는 달리, 종수를 돕는 긍정적인 인물 유형들(혜련 누나, 독사 형 등)의 따뜻한 정이 넘쳐나고,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종수가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가는 모습도 상식선에서 이루어진다. (주인공 종수에게는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살짝 긴장의 맛을 떨어뜨리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어느 나라의 어떤 지역에 살고 있으며,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하는 것들은 이들의 성장과 교육, 그리고 문화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는 구절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지만, 그 책임과 한계는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실, 너무나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송곳처럼 날카롭고 비정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가진 것도 없고, 빽도 없고, 가방끈도 짧고, 머리도 멍청하고, 변변치 못한 부모의 자식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그들. 그래서 구두닦이나 술집 작부로밖에 살아갈 수 없었던 그들. 종수, 개남이, 성길이, 문수, 독사 형, 혜련 누나 등등. 그나마 그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감싸고 위로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 힘으로 희망을 건져올릴 수 있어서 그들은 비상을 노래할 수 있다. '나는 날고 싶다'라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