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재탄생 - 인류학, 사회과학, 심리학, 신경과학, 뇌과학까지 감정 연구의 역사와 미래
얀 플럼퍼 지음, 양윤희 옮김, 경희대학교 비폭력연구소 기획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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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영화를 볼 때면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메마른 것인지 눈물로 온 얼굴이 범벅이 될 정도까지 되지는 않도록 나 스스로 컨트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 최근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영화는 '덕혜옹주'였고 나는 그날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난 후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상영관을 뜰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당시 그 영화를 보러온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평일 휴가를 내고 영화관에 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마주할 필요가 없었다. 본래 진한 화장이 아닌데도 화장이 지워지고 나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볼썽사나웠다. 하긴 덕혜옹주도 그 신분에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뭐.. 나같은 평민이 그 정도 사나운 꼴이야.. 그렇지만 나도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그 상황은 빨리 피하고 싶었다.

몇 달 전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서울대학교 신종호 교수님의 「저, 감정적인 사람입니다」를 보면서도 머리 속으로 연거푸 '아하!'를 외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말씀은 데카르트의 이론에 대한 반박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데카르트 철학의 제 1 명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긴 이 명제에 신 교수님은 반기를 드셨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영역이고 감정은 이성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다. 어린 아기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울음을 터뜨릴까? '아, 지금 내가 울어야할 때야. 그래야 엄마가 나의 축축한 기저귀를 갈아주시겠지!' 하며 우는 아기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뭔가 찝찝하고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려고 하니까 괴성을 지르며 울어댈 것이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교수님의 반론에 나는 100% 찬성한다.

이렇게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연구한 사람은 비단 서울대학교의 신종호 교수님만은 아니다. 좋은 기회로 만난 이 책 「감정의 재탄생」 역시 우리의 감정에 대해 깊이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The History of Emotions(감정의 역사) 라는 조금은 생소한 영문 제목의 이 책은 「감정의 재탄생」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약 450 페이지의 두꺼운 감정에 대한 연구결과를 담은 이 책은 미주와 참고문헌, 그림의 출처만으로 약 100 페이지를 장식한다. 어떻게 보면 무거울 수 있는 이 책과 내용은 작가의 '들어가며'를 읽으며 좀더 친숙해진다. 감정이 무엇인지, 누가 그 감정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지,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유래하였는지와 그렇다면 감정에 역사가 있지는 않을지를 무게감 있게 다루어준다. 그리고 감정의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에 대해 소개한다.

이 책에서 논하는 감정의 역사는 해부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둘의 연관 관계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감정을 느끼고 이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동물/사람의 몸의 일부분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출발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이든 세상에 존재해야만이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감정이라는 연구를 '생명공학'과 결부시켰다는 점이 나는 마음에 든다. 뭔가 책을 읽으면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퍼즐을 정확하게 맞춰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이 책에서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 확신한다.

이 책은 '생명공학' 뿐만 아니라 '인류학'의 관점에서도 논한다. 과인지된 감정과 저인지된 감정이라든가 사회구성주의를 통해 감정의 사회학을 다루며 그 이후 감정의 언어학에 대해서도 다룬다. '학(學)'이라는 것은 언제 들어도 어렵지만 '감정'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연구되는 다양한 학문들은 또, 다양한 학문들 안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꽤 흥미롭다. 다양한 각도에서 감정을 살펴본 후 마지막 약 50 페이지는 감정 연구의 역사에 대한 전망에 대해 소개한다.

'감정'에 대해 이만큼 자세하게 연구한 책이 지금껏 있었을까. 새로운 관점에서 논하는 '감정'은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의 호기심을 깊숙이 자극한다.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만케 한다.

※ 저 역시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감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를 아는 것은 쉽지 않겠죠. 어쩌면 태초부터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멋진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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