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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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까지도 불로불사, 불로장생을 꿈꾸며 죽음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고 유언장조차 쓰지 않았다는 중국의 진시황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 그토록 원하던 불로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약 520 마리의 말과 8,000명 이상의 병사들과 함께 지하에 묻혔다. (그 규모는 실로 방대해서 2016년 12월 중국 시안에서 직접 본 진시황의 무덤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병마용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그 많은 병마용의 표정과 복장들이 제각각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 지금까지 숱하게 많았겠지만 우리는 우리 중 누구도 영원토록 땅 위에 존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종교의 영향으로 땅 아래나 하늘, 바람에 떠도는 영혼 등 영생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해진 수명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잘 죽기(Well-dying)를 원하고 이를 위해 잘 살기(Well-being)가 수반되어야 한다. 잘 죽기는 잘 살기보다 비교적 뒤늦게 도입된 개념이다. 나는 죽음의 원인 중 70%를 '노화'가 차지한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현상에 과학이 개입할 때가 되었음을 주장한다.

이 책 「죽음의 죽음」은 일반적인 책들에 비해 두꺼운 책임에도 술술 잘 읽힌다. 나는 이 책이 예전 내가 배웠던 지식들을 한번 더 리마인드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뭔가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나는 오후로 훌쩍 넘어오는 시간까지 모두 다 읽었다. 어쩌면 다른 분야의 전공자가 이 책을 읽었다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들에는 주석이 달려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초판은 스페인어로 출간되었지만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 22개 언어로 이미 출간 계약이 맺어졌고 곧 세계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함께 나눌 예정이다.

장수의학은 생명공학, 인공지능, 컴퓨터 과학, 생물학, 노화 과학 등을 모두 포괄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분자생물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핏 분자생물학이 생물학의 일종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읽은 우울증, 자살에 관한 책들에서 이러한 증상과 시도/결과들은 노화와 연관이 깊었다는 점에서 심리학 역시 장수의학의 범주에 넣어 주어야 할 것 같다.

1918년에 발병하여 1920년이 될 때까지 약 2년간 지속된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빚어낸 사상자의 수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그렇게 1 세기가 지난 우리는 2019년 12월 코로나 19를 맞이하게 되었고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는 승리하였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코로나 19를 퇴치하기 위해 생산해낸 백신의 수는 90억 개가 넘는다고 한다.

'노화'가 질병이라고 생각하는가?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직까지 이를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 TED 강연을 보다가 '비만'을 질병으로 간주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영상을 감명깊게 본 적이 있다. 이제 '비만'도 '노화'도 인류가 뛰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의 일종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골다공증은 과거 노화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여겨졌으나 세계보건기구는 1994년 이를 질병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무작정 어려운 이야기들로 시작하지 않는다. 신화와 고대 문명 이야기로 시작하여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려주고 바야흐로 빅데이터 분석, AI 의료를 포함하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윤리적 책임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면 노화를 방지하고 생명을 지킬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최초의 살아있는 생명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에서는 아마도 세균(Bacteria)이 그 시초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이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기가 막힌 생명력을 자랑하고 짧은 시간 내에 스스로 증식해내는 힘을 가졌다. 실제로 적정 수준의 먹이만 제공이 되면 0도에 가까운 환경에서도 증식을 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러한 무한의 생명력은 세균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불멸의 세포로 잘 알려진 암세포 특히, 실험실에서 엄청난 양으로 배양되는 HeLa 세포는 인간 세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을 과시한다. 비정상적으로 빠른 증식을 하는 이 세포는 백신 개발이나 인체 민감성 조사 등에 활용되는 아주 귀중한 세포이다. 이 세포는 결코 노화하지 않는다.

우리 신체에서 노화하지 않는 세포는 유전물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생식세포와 암세포(유쾌하지는 않지만)이다. 노화에 대한 의문을 우리만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책에서 언급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50년경 남긴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떤 동물은 수명이 길고 다른 동물은 수명이 짧은 이유, 한 마디로 수명의 길이와 죽음의 원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노화의 원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그룹은 세상에 아주 많다. 그 중 한 그룹에서는 노화가 9가지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 원인 중 하나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의 소통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페이지 95).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은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 몸 안에서 세포들이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노화'로 귀결될 수 있다니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기존의 일자리는 상당 수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에 맞게 대체된다. 그래서 저자는 새로운 산업은 늘 불가능한 것으로 태어나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자동차가 상용화 되기 전 헨리 포드는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자동차'보다도 '더 빨리 달리는 말'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큰 거부감없이 유전자가 변형된 식품을 먹고 있다. 나의 기억에 불과 15년 전만 해도 우리는 유전자변형생명체(GMO)를 먹으면 곧 죽을 것처럼 거부했다. 일부 유전자를 변형함으로써 우리의 노화를 늦춰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거부할 것인가.

노화는 실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방지하고자 일본의 소니와 도요타는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로봇을 건강 도우미와 간호사로 활용하고 있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 교육, 기타 취미 활동 등 다양한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또 경제 인구의 증가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70대이신 나의 지인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도 늙었지만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빨리 죽어야 해.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도 말해요.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나는 연명 치료같은 거 절대 필요없고 오늘 당장 죽어야 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아."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와 젊은 층에게 가혹한 건강보험료가 바로 그것이다. 나도 처음에 「죽음의 죽음」을 대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자는 과연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이 팽배한 속에서도 죽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이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다행히 책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이 부분도 적절히 잘 다루고 있다. 아마 이 부분은 Chapter 5, 6에서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할 것이다.

만약 노화에 대한 연구가 지연이 될 경우를 대비하여 저자는 플랜 B를 준비해두었다. 몇몇 환자들은 머리만 냉동 보존을 하기도 한다는 대목은 조금 끔찍하다. 하지만 25년간 보존되었던 배아가 2017년 아기로 탄생된 기적을 이루었다. 또 여러 과학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냉동되었던 인간이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기억까지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미래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여러 계층에서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또 노화 역전 프로젝트 달성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로드맵 등 최신 지식을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는 본문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풍부한 참고도서의 목록과 책의 내용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색인이 있다.)



※ 언제 다가올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므두셀라리티*'의 순간이 온다면 무엇을 해야할지 미리 생각해두고 준비해두어야 겠습니다. :)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질병이 사라지고 사고나 타살에 의해서만 사망이 발생하는 미래의 순간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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