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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자살의 원인부터 예방까지, 25년의 연구를 집대성한 자살에 관한 모든 것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백종우 감수 / 심심 / 2023년 5월
평점 :
2008년 10월.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충격적이었던 자살 사건이 일어났던 초가을.
당대 최고의 연예인이었던 최진실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실 전성기를 이미 누린 후였을지도 모르는 그녀는 복잡한 가족사를 뒤로 하고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외로운 길을 떠났다.
그때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한 가을 바람이 나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이어진 베르테르 효과에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의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저 서글펐다. 아마 그 해가 끝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행동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슴으로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닌 그냥 TV에서 몇 번 본 것이 다인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나는 다행히 내 주변에 누구도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없다. 그리고 또 천만다행으로 나 역시 자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어떤 마음으로 그들은 세상을 등지는 것일까. 그렇게 이 책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를 만났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랑하는 스승과 친구를 자살로 잃었다. 자살 연구에 몰두하면서 자신 역시 자살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고 느낀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살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이 책은 실제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지침을 알기 쉽게 제공한다. 또 과학 논문을 읽지 않는 일반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전문적인 견해가 결합된 책으로 저자는 그의 경험담과 함께 자살의 위기에 있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이 책은 누가 자살할 위험이 있는지, 자살 생각은 어떻게 행동화되는지, 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와 자살로 고통받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얼마 전 내가 읽은 책 「강물 아래, 동생에게」 역시 동생을 잃고 난 후 형이 자살에 대해 깊이 연구하게 된 계기를 다룬 책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일이 벌어질대로 벌어지고 난 후에야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사실이 남은 이를 더욱 위태롭고 외롭게 만든다.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자살을 경험한다. 충격적이게도 40초마다 한 명 씩, 이 세상 어딘가 누군가는 자살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함에 틀림없다. 또 자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살은 충분히 예방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자살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가지 속설들이 어느 정도는 잘못된 것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그 속설들 중 나도 조금은 오해를 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 그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하게도 나 역시 자살은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자살은 삶을 끝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선택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나의 머릿 속 무언가를 건드려주었다. 나도 정신적 고통을 겪어 보았고 그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갇힌(trapped)' 듯한 느낌을 나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임을 알았기에 나에게 있어 자살시도까지도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 순간보다 더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행복으로 가는 문 감사」의 저자는 생활고로 삶을 끝내기 위해 수면제를 잔뜩 먹었지만 자살 실패 후 요양원에서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마음을 다독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분인 것이다.
저자는 자살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시각을 따뜻한 관심으로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자살 유가족'이라는 용어는 현재 '자살 생존자'로 순화되었다.)
그 노력들 중 저자가 자살을 시도했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나는 왜 자해를 했느냐는 물음에 한 15세 청소년이 한 말이 뼈에 사무쳤다.
"고통을 내 가슴에서 팔로 옮기고 싶었어요."
자살에는 평균 3.9개의 상황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 하나의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살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이 개개인의 고립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살아갈 이유를 알려줄 사회관계망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순순히 그 어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린다.

※ 이 책을 읽고 경청의 중요성과 침묵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신 이 책을 읽고 쫑쫑은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