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가볍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가벼움'이라는 것. 우리 사회에서 가볍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응, 그 사람 참 가벼운 사람이야." 물론 문자 그대로 체중이 적게 나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으나 어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어의 뉘앙스는 완전히 다른 뜻이 되버린다. 생각이 가볍거나 몸가짐이 신중하지 않은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여러분에게 누군가 "당신 참 가벼운 사람이군요!" 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가?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날 밤 잠은 이미 다 잔거나 매 한가지이다. 나는 아마 '내가 뭘 잘못했나?' '나의 일 처리가 신중하지 못했나?' 하며 이리 고민 저리 고민하느라 밤새 뒤척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볍다는 것은 은연 중에 좋지 않은 의미로도 해석이 될 수 있어서인지 몰라도 우리 대부분은 무거워지려고 노력한다. 더 커다란 집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더 많은 돈을 우리 주머니에 채우고 싶어한다.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무거워진 사람들끼리 옥신각신하며 이 땅에 살고 있다.
1885년생인 알도 팔라체스키는 이탈리아가 아끼는 미래파 작가로 1911년 「연기 인간」의 초판을 써낸다. 옮긴이의 의도에 따라 오늘 내가 읽은 이 한국어 버전은 바로 그 초판을 번역해낸 책이지만 원제목은 「페렐라의 법전」으로 독자에게 좀 더 깊이 있게 다가서기 위해 「연기 인간」으로 명패가 바뀌었다.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작가는 아마도 전쟁에서 느낀 바가 많은 듯 하다. 그가 살다 간 일생 중 50년이라는 세월을 이 책을 다섯 번 쓰는데 보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연극의 형식이다. 처음 읽을 때는 조금 어색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무대 배경을 설명해주는 듯한 각본이 참 매력적이다. 일일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할 필요가 없다. 배경은 배경일뿐이니까.
작가에게 '가벼움'이란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벼움은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이제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자.
바람 속에 곧 흩어져 버릴 것만 같은 회색 외투를 걸친 사나이. 모자를 눌러쓰고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인간이다. 그는 연기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굴뚝 위에서 33년간 머물다가 세 명의 할머니 페나, 레테, 라마가 들려주는 전쟁, 사랑, 철학에 대한 소리가 사라지자 아래로 내려온 이 연기 인간의 이름은 '페렐라'.
왕궁의 사람들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고 그를 신성시한다. 초상화를 그려주겠다는 화가, 사진을 찍기 위해 신문 읽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둥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작가,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는 은행가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경한다. 국왕은 페렐라를 새로운 법전 편찬위원회의 세번째 위원으로 지명한다.
자신의 무거움을 한껏 자랑하는 남자들. 여자들의 다과회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남성사회에서 소외된 여자들. 그 여자들 안에서도 '페렐라'에 대한 동경은 이어진다. 서로를 시샘하기도 하고 자신의 아픈 사랑에 대해 혹은 불멸의 사랑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페렐라의 눈에는 그저 여성들의 무리는 날개가 잘려나간 크고 검은 새들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페렐라는 하느님을 만나기도 무도회에 참가하기도 하며 수녀원에도 방문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어나가며 장면이 하나씩 바뀔 때마다 전쟁, 사랑, 철학에 대한 의문을 계속 품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가장 철학적으로 다가온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