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_0419
달빛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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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장르. 알면 알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아버지와의 한 목욕탕 대화에서 듣게 된 일화를 바탕으로 이런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부 가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소설에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는 이 소설이 실화에 근거해 작성된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흑탄은 모여 연탄이 되고 지유는 기억을 쌓으며 사람이 되어간다(p. 10)." 어쩌면 소설 속 지유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 기억을 쌓으면서 세상 속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 나가는 중이 아닐까. 소설 속 지유는 많이 배운 아버지의 이중적인 얼굴에 환멸을 느끼고 일본인이었던 어머니를 찾아 마산으로 떠난다. 몰려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석탄공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 친구들. 제법 공부머리는 타고 났으나 아버지에게 벗어나고자 엄마를 찾아 먼길을 내려온 지유에게 어머니와의 시간은 딱 3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의 석탄공장 인근에는 여중, 여고, 그리고 야간반 여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여학생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술을 마시던 타인과 싸움이 붙기도 하고 여학생들을 따라 난생 처음 백화점이라는 곳도 가본다. 술집과 백화점, 식당에서 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 지유는 본인의 꼬인 삶과는 달리 세상은 잘 돌아가고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 역시 뻐걱거리며 돌아가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공부를 한다는 것.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 공부를 하고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소설 속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순서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의 작품 구성을 생각나게 하는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스토리들이 끝에 가서 하나로 모이게 되는 전개이다. 소설을 읽어 나가며 이들의 주변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보는 재미와 한 편으로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고 현 시대와 묘하게 이어지는 '블로그'라는 매체가 있다. 그들의 기억 속의 일들. 본인은 치매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과 현 시대의 젊은이들은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SNS를 통해 알게 되면서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하나 하나 연결해 보는 소설 속 또 하나의 주인공.


나는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현 세대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서 나의 또 다른 방식으로 고리타분하던 생각이 절묘하게 바뀌었다. SNS가 현 세대 젊은이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시절 젊은이었던 지금의 어르신들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도 충분히 가교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소설은 일제시대를 지나 한국전쟁, 민주화 혁명과 2017년 세월호 사건, 대통령 탄핵,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까지.. 한국의 근 현대사를 모두 아우른다. 그 수많은 나날들을 지나오며 우리가 특히, 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차별, 동양인으로써 한국인이 미국 내에서 겪어야만 했던 인종 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권력을 장악하려는 이들과 장악 당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국민도 소설 속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무기력한 모습은 아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기를 쓰고 일어나는 우리 민족의 근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내 마음 속에 남는 문장이 있다. 바로 쓸쓸함의 반댓말은 '가족'이라는 것이다. 쓸쓸함의 반댓말을 지금까지 많이 고민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저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함께 있다고 해서 꼭 쓸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사실 해보았다. 그런데 쓸쓸함의 반댓말이 가족이라니. 맞다. 그런 것 같다. 우리 중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다.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것만 같아 소설을 처음에 집어들고는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동참했던 4.18 걷기. 난 정말 그냥 선배들, 친구들과 함께 걷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그날 보면 안 될 것을 보았고 지금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공포스럽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1960년의 그 날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누군가에겐 분명 상처였을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축제였을 그 날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이 소설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 최대한 스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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