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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 우린 애초에 고장 난 적이 없기에
알리사 지음 / RISE(떠오름) / 2023년 4월
평점 :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고쳐 쓰다니! 아니라는 부정으로 끝을 맺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있을 수도 없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순간 고장이 난 라디오가 떠올랐다. 이렇게 눌러봐도 저렇게 눌러봐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던 나의 낡은 라디오. 휴대폰이 모든 기능을 대신해주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내 기억에서 점차 멀어져 지금은 어느 구석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라디오. 어쩌면 몇 해 전 이사하던 날 아무렇지 않게 버려버리고는 나는 기억조차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쳐서 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긴 할텐데 만약에 그 라디오처럼 무슨 수를 써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사람을 버리게 혹은 버려야 되는건가. 고장난 라디오를 눈 앞에서 영원히 치우거나 후회없이 버려 버리듯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산다. 우리가 MBTI 검사를 한 결과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이 있는가. 걔 중에는 산들바람에도 쉬이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강풍이 휘몰아쳐도 끄덕이지 않을 사람도 있다. 쉽게 이겨내는 그 사람들. 그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있을까. 나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흔들림 없는 '굳은 심지'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회복탄력성. 아무리 고된 일을 당해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1년여 전 유명한 연예인 커플의 가스라이팅 논란이 있었다. 여자 연예인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연기에 몰입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가스라이팅을 했고 자신의 연예계 생활을 도와주는 사람들에게까지 여왕 대접을 하도록 세뇌시켰던 사건이다. 사실 상대 남자 연예인에게도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상해를 입혔지만 그들의 이상한 관계로 인해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망쳐버린 작가와 엉망이 되어버린 작품을 봐야했던 시청자들에게까지 그 여파는 일파만파 번져갔다.
그 전까지는 나는 그 단어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다. '가스라이팅' 도대체 가스라이팅이 뭐지 하며 검색엔진에 이 단어를 입력해보았다. '가스등'이라는 영화로부터 불거져 나온 이 단어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면 상대가 마치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결정지어스스로 자신의 생각이 본래 그러했듯이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다.
'가스라이팅' 이라는 단어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어? 지금 나 가스라이팅하는거야?" "오, 지금 나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같아." 등 농담 중에도 쉽게 이 단어를 입에 오르내린다. 생각해 보면 정말 심각한 의미를 지닌 끔찍한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여러 종류,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가스라이팅'의 결과로 '호구'가 생겨나고 '호구'가 된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인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가스라이팅'은 아주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회에서 수없이 많은 가스라이터를 만난다.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나는 가스라이터는 어쩌면 피할 수 있는 양호한 가스라이터일지도 모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는 말도 있으니. 하지만 부모를 포함한 형제, 친척들에게서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면 그야말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오랜기간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한 결과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지난 번에 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 역시 우울증을 앓고난 후 마치 공식처럼 공황장애를 연이어 앓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앓고 있던 공황장애가 씻은 듯 나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노력으로 현재까지도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거기에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자서전을 읽듯이 술술 잘 읽힌다. 저자의 필살기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해 나가는 방식이 좋았다. 특히, 이 책에서 가스라이팅을 역이용하자는 부분을 눈여겨 보았다. 책의 내용을 보기 전까지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듯한 가스라이팅. 그것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나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에게 주문을 건다. "쫑쫑, 넌 잘 할 수 있어. 지금껏 잘 해왔잖아! 화이팅!"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나를 향한 가스라이팅의 일종이긴 하다. ^^
저자는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우울증,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 매일 100 페이지 책읽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현재 우울증도 공황장애도 앓고 있지 않지만 (앓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 나 역시 하루 하루 책을 읽으며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는 것까지 나와 흡사해서 그저 저자의 책 한 권 읽은 것만으로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같다.
* 이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책으로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