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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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물은 볼 때 오! 오! 탄성을 연발하며 읽거나 보지만 끝난 후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스며드는 오싹함이 있기에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그들만의 상상의 세계가 궁금할 때가 있다. 특히나 잔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에겐 뭔가 색다른 것이 필요하다.

하긴 작년 즈음엔가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을 보고는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당시 약간은 시일이 흐른 후이긴 했지만 세간에 떠도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 이혼 후 재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전 남편을 만나 살해하고 당시 두번째 남편의 아이까지 죽여야 했던 한 여자. 그녀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기에 나는 밤 중에 자다말고 실눈을 뜬 상태에서 벽에 비친 작은 그림자에도 바들바들 떨었다.

아주 더운 한여름이라 나는 창문을 열어놓은 후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 가족들이 모두 차박을 간 것이다. 내가 잠을 깬 이유는 선풍기 바람이 더 이상 내 더운 살갗에 닿지 않음을 자각한 것이었고 벽에 비친 작은 그림자의 정체는 집 앞에 서있는 나뭇가지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 여자의 기괴한 행동들과 목소리들이 자꾸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같아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 다 큰 어른인데도 그게 그렇게 무서웠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마냥 웃음만 나온다. 사실 나는 그 책이 우리 집에 있는 것조차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책을 다 읽자마자 내가 자주 이용하는 기부처에 바로 보내버렸다. 표지만 언뜻 보여도 무서움증이 몰려와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무서움을 느끼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나는 그 지점은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느냐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남의 나라에서 아무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들, 지진에 허리케인으로 날려간다고 한들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 공포를 느낄리 만무하다. 공포보다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까. 공포는 멀리서 가져오는 게 아니다. 공포는 바로 내 앞에 있을 때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책은 세기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더 많은 공포감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작가는 그 책을 마치며 자신의 소설이 그 사건과는 무관함을 밝히긴 했으나 누가 보아도 그 소설의 모티브는 그녀의 것이었다.

나는 최근 또 다른 호러소설을 만났다.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남유하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인 「부디 너희 세상에도」이다. 사실 이 대제목은 8개의 단편 중 가장 마지막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작가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소설의 등장인물이 작가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나 할까. 앞의 7개 단편소설의 시점이 조금 멀다면 마지막 단편은 독자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인물들을 살펴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독창적인 시도가 좋았다.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작가의 단편들은 모두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바이러스나 세균같은 전염성이 있는 미생물들 혹은 괴물에 빗대어 소설을 써내려간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3년 이상 우리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19가 작가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스포를 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로 그것이 작가가 힘들게 만들어낸 그들의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같은 책을 읽었다할지라도 독자들의 느낌은 내가 느끼는 바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각 단편들을 읽으며 생각한 사회적 이슈들, 느낀 바와 나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반짝이는 것>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다이웰? 잘 죽는다는 게 무엇이지? 나는 죽어가는 순간 어떤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될까.


<에이의 숟가락>

우리가 살면서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뇌의 나무>

자연은 모든 사람 앞에 펼쳐져 있는 단 하나의 책이라고 했던 루소의 말이 떠오른다.


<화면 공포증>

화면없이 요즘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타이핑 중이니까.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유일하게 내가 단정짓기 어려운 소설이다. 이 남자가 기억하는 '미래'라는 것은 본인이 만들어낸 망상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이름 먹는 괴물>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님의 시 "꽃"이 떠오른다.


<목소리>

개인적으로 단편들 중 가장 소름끼쳤던 소설.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이 단편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들이 현재 실존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양재천, 꽃시장, 고속터미널, 삼성역 등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곳들로 마치 실제 상황인양 피부에 와닿는다. 소설을 읽는동안 나는 양재천을 걸었고 꽃시장과 고속터미널을 다녀왔으며 삼성역 주변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겐 익숙한 공간들로 언젠가 그곳을 지나가게 된다면 이 소설이 생각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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