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탄생 - 호구력 만렙이 쓴 신랄한 자기분석
조정아 지음 / 행복에너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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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세상에 나같은 호구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어쩜 호구의 종류도 이렇게나 다양한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유능한데 자신감이 없는 사람, 무대뽀로 우기는 사람에 늘 당하는 사람... 프롤로그를 보면서 점점 화가 차올랐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바보천치가 나만이 아니었어!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면서 왠지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학교 수업 시간 중 발표를 하는 시간이 가장 싫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잠시 그런 나를 극복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모든 수업마다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 그때의 나 칭찬해. ^^) 지금도 발표하거나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발표를 해야하고 누군가의 섭외로 공개적으로 나의 의견을 주어야 할 때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6년여 전에 있었던 유럽 어느 회의장에서 영어로 발표를 했던 순간이 가장 피크였던 순간이다. 인생 최대의 발표 순간이었는데 오히려 그때는 그다지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중이다.

 

어린시절의 나. 그땐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엄청난 일도 아닌데 왜 그래야만 했지?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본다.

 

일란성 쌍둥이인 나는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다. 지금이야 난임 시술 등으로 쌍둥이가 아주 많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쌍둥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큰 동네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었던 데다 엄마는 늘 우리에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똑같은 옷을 입혀 내보내셨다. 머리끈이나 구두, 시계, 손목에 장식 등등 어느 하나 다른 것이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가 쌍둥이인 것이 너무 좋으셨던거다.

 

길을 가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어떤 경우는 우리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쁘다 귀엽다 하시기도 했다. 길 위에서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좌우 번갈아 가며 수도없이 도리질을 해댔고 누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꼭 확인을 하고 나서야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던 것 같다. 몇 번을 망설이다 엄마께 제발 같은 옷 좀 입히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그 후로 우리는 똑같은 옷을 입지 않았지만 나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닮은 언니, 이 두 사람의 모습에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은 여전했다. 그런 경험은 커가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는데 우리가 자라면서 그런 분들께 쓰다듬을 수 있도록 머리를 내어줄 일은 없었지만 어딜 가나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아마 그런 이유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해야 하고 무엇을 해도 잘 해야 하고 그런 사람으로 성장해 갔던 것 같다. 이런 부분은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고등학교 교사셨던 아빠는 매달 가족회의를 주최하셨다. 가족회의 때마다 식구 구성원 하나 하나는 이전 한 달동안 본인이 잘한 일과 반성할 일,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발표 아닌 발표를 해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참 좋은 교육방식이었다.) 그리고 어느 곳을 가도 OOO 선생님 쌍둥이 딸 XXX구나. 그런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워낙 시선을 받으니 무엇을 해도 잘 해야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시험을 볼 때마다 교무실 벽에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 순위대로 학생의 이름을 대자보로 붙여놓았다. 당시 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내가 조금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니 학교만 같았던 것이 아니라 우린 같은 반이었다. 오죽하면 선생님들도 우리 반에 들어오시면 이번에는 쌍둥이 중 누가 성적이 더 좋네 지난 번에는 누가 성적이 더 좋았는데.. 라고 하셨고 친구들도 교무실만 다녀오면 이번엔 누가 이겼네 졌네 하는 말도 안 되는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였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또 스트레스..

 

그때는 너무나 스트레스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은 늘 언니였던 것이다. 지금은 서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어서인지 크게 비교될 일은 없고 오히려 몸이 점점 커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의 소중함을 더없이 느끼고 있다. 직장 생활로 받는 스트레스를 함께 반으로 나누고 좋은 일은 두 배로 불린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을 하니 참 우습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저자는 호구의 종류를 아주 다양한 예를 들어 알려준다. 때론 아 이것도 호구의 일종이구나 하는 것도 있다. 신드롬의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햄릿 신드롬, 중간아이 증후군, 므두셀라 증후군 등등 신드롬의 종류별로 그 특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각 장마다 제발 이러지 맙시다! 하는 Let's not do it! 을 제시한다.

 

답답한 심정은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사이다로 바뀐다. 어떻게 더 지혜롭게 폭발할 것인가, 착하면서도 가시를 세우는 방법, 못된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 실질적인 조언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착한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건 옳은 얘기다. 하지만 나만 착해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효율적이고 건강하게 분노하자.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 갑자기 확 바뀔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을 때가 가까워.. :)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내려준 처방대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다면 어느 날 더 행복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명심하자. 내가 행복해져야 세상도 행복하다.

 

※ 앞으로 조금씩 실천해야 할 숙제가 담겨있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이 책을 읽고 개인적인 주관으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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