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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7주년 기념 개정판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3월
평점 :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며 이가 바득바득 갈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물론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좋아서가 아닌 기분이 좋지 않은 감정에서 기인한 경우를 말한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내 마음과 꼭 같고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실제 사람살이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남녀간의 연애생활이나 유산 상속, 부모 봉양에 대한 문제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람에 관한 문제, 그로 인한 사람에 대한 실망과 절망 같은 감정들을 안고 꾸역꾸역 살아간다.
독자들 중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사람에게 실망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았던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아마.. 외계인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AI?
얼마 전 직장 상사분이 주말에 골프 여행을 간다며 AI 음성 서비스 로봇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AI야! 나 주말에 골프를 가는데 날씨 좀 알려줄래?" AI는 즉석에서 "지금 계신 곳의 오늘 날씨는 하루종일 어둡겠으며.."하자, "아니, 여기 말고 이천 날씨!" AI는 다시 "가시는 골프장이 어느 곳에 있는 것인지 확실히 알려주시겠어요?"라고 했고 상사분은 "어, 이천에 있는 골프장이야."라고 했다. 상사분은 마음을 한번 가다듬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이번 주말 날씨 알려줘." AI는 그 질문에 처음 답했던 그대로를 다시 읊어대기 시작했다. "지금 계신 곳의 오늘 날씨는 하루종일 어둡겠으며.." 나의 상사는 "AI, 너 이제 보니 바보구나." 그때 AI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는가?
"저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그 대화를 쭉 지켜보던 나는 웃음이 터졌다. 보통 그런 경우 상대방이 사람이라면 "저 바보 아니에요. 질문을 제대로 하셨어야죠!" 내지는 "죄송합니다.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드렸네요."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질문자와의 관계에 따라 여러가지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AI는 공부를 하지 못했단다. 그러니 그런 질문은 하지 말란거다. 참 속시원한 답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상사는 헛웃음을 웃고 바로 휴대기기를 꺼버렸다.
정말 보기 싫은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이 TV 화면에 나타난 것처럼 리모컨을 들고 그냥 꺼버릴 수 있다면(꺼져버리게 할 수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 그냥 'off'를 눌러버리거나 채널을 바꿔버릴 수 있다면? 보기 싫은 대상이 사람이 아닌 AI라면 해결방법은 더 쉽다. "Reset!"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순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미워한다고 한다. 순자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중국은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런 학설이 나왔을거라고 예상은 되지만 맹자가 주장했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달라도 너무 다르기에 무엇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까지 사람의 좋고 나쁨은 이렇게 유교사상과 그 이전의 철학, 심리학의 테두리 안에서 논할 문제였다. 그런데 여기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의 주인공이 있다. 오카다 다카시. 바로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라는 재미있는 책의 저자이다. 오카다 다카시의 이력은 아주 흥미롭다. 철학을 전공한 후에 의학을 전공했다니 보통 비상한 머리가 아닌 분이다. 그의 이력 탓인지 이 책은 철학책 같기도 하면서 또 어떻게 보면 의학책 같기도 하다.
이제 조금씩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체에 유해한 세균, 곰팡이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항원으로 작용한다. 이때 우리의 면역체계가 이 바이러스를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잘 막아내면 우리는 아무런 아픈 증상을 겪지 않을 것이고 면역시스템이 충분히 튼실하지 않다면 이로 인한 병을 막아낼 도리는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면역학의 기본 반응인 항원-항체 반응에 대한 설명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색다른 교육배경을 가진 저자가 써내려간 일반 심리학 책정도로만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뒤집어 버린 이 멋진 저자는 인간 관계에서도 항원과 항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일관성 있게 설명한다.
이 분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항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원이 '이물질'로 규정된다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 함께 있으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람 역시 항원으로 설명하는데 무리가 없다. 정말 기가 막힌 발상이다. 지금까지 통상적인 개념인 '우울증'으로는 이러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울증은 말 그대로 나의 기분이 다운되는 증상이다. 그럼 왜? 왜 나는 기분이 나빠져야 하지?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전후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아주 이기적인 처방이다.
인간 알레르기로 인한 장애는 생각보다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p. 42). 나는 아주 심한 강박성 장애를 겪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기술사 생활을 했던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의 방에 놀러갔다. 친구는 없었고 그 방을 함께 쓰는 선배 언니가 혼자 있었는데 대뜸 나에게, "혹시 너 주말에 우리 방에 왔었어?"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 다음 언니의 대답은 나를 아주 경악하게 만들었다.
"주말에 누가 우리 방에 왔던 흔적이 있어. 우리 방을 들어오자마자 내 침대 머리맡에 한 번 앉았고 그 사람은 다시 내 책상으로 와서 의자에 왼쪽으로 삐딱하게 앉아서 발을 앞 뒤로 몇 번 흔들었지."
와.. 온몸에 소름. 난 그 후로 그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저자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싫어하는 현상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이유를 설명해 준다(p. 48, 51, 52). 또 그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몸은 약해질대로 약해졌을 때 그 부분을 감싸안고 자멸해 버리는 세포사멸이 우리 몸 안에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음을 알려준다(p. 55). 분자생물학적 현상과 그 설명을 이 책에서 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가끔은 이유가 없다. 저 인간이 싫은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싫어지기도 하고 죽도록 싫었는데 문득 좋은 감정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는 '애착관계'에 주목한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거나 겪는 사람은 바로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숭이 실험의 내용과 분석한 결과를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p. 150).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저자가 첨부한 이 원숭이 실험의 전개 과정을 꼭 자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책에 소개된 이 실험과 결과는 아주 흥미롭다. 나는 이 실험결과를 내 삶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지 처절하게 고민하고 있다.
얼마전 내가 읽었던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한다면」에서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준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어디엔가 그 해결방법도 있다.
책을 전부 볼 시간은 없고 정말 앞에 앉은 사람이 너무 꼴도 보기 싫다면! 속성 과정으로 책의 마지막 부분(p. 259) "싫어하는 사람 대응 매뉴얼을 보라. :)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
저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자세한 서평을 보실 수 있어요.
https://blog.naver.com/kijeongkim0202/223068666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