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는 지금 나는 나의 이 글이 또다른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와 과연 나의 글에 대해 독자들이 얼마나 믿어줄 것이냐 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 있다. (에르난 디아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보통 소설책을 접할 때 읽을 때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유지하기 위해 절대 결말을 미리 보거나 중간중간 뒤를 들춰보지 않는다. 아마 어린 시절 코넌도일의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내 몸에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배어든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보니 나의 모습도 이 책에서 그려진 3명의 여인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이런 흥미진진한 소설들을 읽고 친구들에게 긴장감있게 전달해주기를 즐겼다. 마지막 범인을 밝혀내는 순간에 아이들의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오락이었고 다른 책을 또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나는 아직도 중학교 2학년 국어수업 시간을 통째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름끼치는 추리 소설 「쥐덫」에 대한 이야기로 장악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 그때가 참 좋았다.)
'trust'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신뢰, 신임, 신탁 재산이라는 명사적 의미와 사람을 신뢰하다[신임하다/믿다], (무엇이 사실임을 혹은 옮음을) 믿다라는 동사적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을 가장 처음 집어들었을 때 '트러스트'라는 제목을 보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나를) 믿어주세요."였다. 다짜고짜 자기를 믿어달라는 이 책. 제목만으로도 꽤 흥미로웠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글쎄.. 이것이 "Trust me."인지 아니면 "Trust you."인지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차라리 책의 제목이 "Pick"이나 "Select"였다면 어땠을까? 그럼 왠지 하나정도는 자신있게 선택할 수 있었으리라.
이 책에는 4가지의 이야기가 묘하게 연결된다.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 듯하지는 않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그들만의 연결점이 있다.
소설, 자서전, 회고록과 일기라는 4개의 파트는 모두 각각 다른 형식의 글들이다.
이 네 가지 중 당신은 어떤 것을 믿을 것인가?
아마 이 책을 읽기 전 누군가가 나에게 이 네 가지 장르 중 믿을 수 있는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4번째 파트인 일기라고 답했을 것 같다. 소설은 말 그대로 허구에 가깝다는 기존 관념에서 제외를 시키고 자서전과 회고록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사소한 일도 크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에서 제외를 시켰다. 하지만 일기는? 일기는 다르지 않을까? 내가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적어내려가는거니까. 가장 믿을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이 '일기'라는 것도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독자들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게 될 것이다.
첫번째 파트인 '소설'은 전개가 꽤 흥미롭게 진행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 사회와 전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가문의 이야기. 아주 밋밋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러브 스토리. 그것마저도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강력한 스토리 전개. 한 남자의 성공과 그 남자와 함께 할 수 없었던 미친 아내. 그 아내로 인해 약간의 사람의 냄새를 풍기게 되는 그 남자. 아내를 잃고 난 후 남자와 집안의 쇠퇴.
플롯이 강렬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고전 중의 고전 "제인에어"가 생각났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고전과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음에도.. 아마 이 책을 읽은 몇몇의 독자들은 내 생각에 동의를 할 것이다.) 그 깊은 인상이 뇌리에 꽂히고 꽂혀 비운의 여주인공 헬렌과 관련된 몇 가지 장면들은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던 기간동안 나의 꿈 속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물들만의 특징적인 설명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각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작은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