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통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진짜 나를 깨우다.
왠지 모르게 심리학에 끌리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나는 심리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다. 워낙 딱딱한 느낌의 전공 과목들 속에서 이 과목은 정말 진흙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와도 같았다. 수업 첫 날 교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몇 장의 종이를 나눠주셨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에 대한 답을 넣으라고 하셨다. 워낙 입시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정답이 뭐지, 도대체 뭐지? 하면서 문제를 풀었던 것 같다.
알 수 없었던 건은, 무엇인가 패턴이 계속 바뀌고는 있지만 문제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뭐라고 답했더라? 계속 앞 부분을 컨닝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교수님께서는 "여러분 그냥 지금 당장 생각이 나는대로 답을 하시면 됩니다. 정답은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우리가 작성한 몇 장의 종이를 제출했고 정확히 그 다음주 우리는 제출했던 종이를 다시 돌려받았다.
그때 처음 접했던 MBTI 검사.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검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단 16개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MBTI 검사는 16개 타입이라도 되지 혈액형으로 세상 사람들을 나눈다면 A, B, AB, O 이렇게 4개의 타입으로 짜맞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을 정확하게 물건을 종류별로 가르듯 16개의 그룹이나 4개의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대학시절 교양 시간에 경험했던 MBTI는 확실히 그랬다. 다시 그 수업시간을 돌이켜보자면, 우리는 검사 결과에 의해 총 16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토론 주제를 주셨다.
토론 주제 : 내가 사귀고 있는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며 이별을 통보한다면?
수강생이 많은 관계로 우리의 수업은 대강당에서 진행이 되었지만 여기 저기 그룹들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걸 그냥 두냐,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보겠다는 둥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 아무런 말이 없는 우리 그룹. 그렇다. 우리는 "ISFJ"였다.
아무도 토론을 진행하지 못했다. 대부분 바닥으로 눈을 깔고 있었는데 곧 발표도 해야하고 좀 난감했다. 그때 나의 눈은 고개를 들고 있던 두 세명의 수강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대답은 뭐.. 뻔하다. "그냥 가게 둘 수밖에요." "가는 사람을 어떻게 잡나요.." 뭐 이런 식의 대답들이었다. 한 마디로 자포자기. 그룹별로 토론 결과를 발표할 때 우리 그룹은 정말 대책이 없었다. 그냥 단 한 줄.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 정말 마음에 들지않는 결과였지만 다 함께 토론한 결과를 적는거라 어떻게 바꿀 수가 없었다. 나는 확실히 그때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I' 지수가 낮은 편에 속했다. 그렇게 토론을 끌어가려고 노력은 했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도 몇번 MBTI 검사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창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서점에서 집어들었던 책.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 역시 MBTI 검사에 따라 직업군을 연결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언젠가는 본인의 MBTI 결과를 가지고 직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도 있다. 심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은 MBTI는 정말 매력넘치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여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의 저자 역시 이 재미난 검사를 가지고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