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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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통해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진짜 나를 깨우다.

왠지 모르게 심리학에 끌리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나는 심리학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었다. 워낙 딱딱한 느낌의 전공 과목들 속에서 이 과목은 정말 진흙 속에서 반짝이는 진주와도 같았다. 수업 첫 날 교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몇 장의 종이를 나눠주셨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에 대한 답을 넣으라고 하셨다. 워낙 입시에 길들여져 있던 터라 정답이 뭐지, 도대체 뭐지? 하면서 문제를 풀었던 것 같다.

알 수 없었던 건은, 무엇인가 패턴이 계속 바뀌고는 있지만 문제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뭐라고 답했더라? 계속 앞 부분을 컨닝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교수님께서는 "여러분 그냥 지금 당장 생각이 나는대로 답을 하시면 됩니다. 정답은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우리가 작성한 몇 장의 종이를 제출했고 정확히 그 다음주 우리는 제출했던 종이를 다시 돌려받았다.

그때 처음 접했던 MBTI 검사.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검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한때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단 16개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MBTI 검사는 16개 타입이라도 되지 혈액형으로 세상 사람들을 나눈다면 A, B, AB, O 이렇게 4개의 타입으로 짜맞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을 정확하게 물건을 종류별로 가르듯 16개의 그룹이나 4개의 그룹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대학시절 교양 시간에 경험했던 MBTI는 확실히 그랬다. 다시 그 수업시간을 돌이켜보자면, 우리는 검사 결과에 의해 총 16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토론 주제를 주셨다.

토론 주제 : 내가 사귀고 있는 연인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며 이별을 통보한다면?

수강생이 많은 관계로 우리의 수업은 대강당에서 진행이 되었지만 여기 저기 그룹들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그걸 그냥 두냐,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보겠다는 둥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 아무런 말이 없는 우리 그룹. 그렇다. 우리는 "ISFJ"였다.

아무도 토론을 진행하지 못했다. 대부분 바닥으로 눈을 깔고 있었는데 곧 발표도 해야하고 좀 난감했다. 그때 나의 눈은 고개를 들고 있던 두 세명의 수강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대답은 뭐.. 뻔하다. "그냥 가게 둘 수밖에요." "가는 사람을 어떻게 잡나요.." 뭐 이런 식의 대답들이었다. 한 마디로 자포자기. 그룹별로 토론 결과를 발표할 때 우리 그룹은 정말 대책이 없었다. 그냥 단 한 줄.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 정말 마음에 들지않는 결과였지만 다 함께 토론한 결과를 적는거라 어떻게 바꿀 수가 없었다. 나는 확실히 그때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I' 지수가 낮은 편에 속했다. 그렇게 토론을 끌어가려고 노력은 했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도 몇번 MBTI 검사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창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서점에서 집어들었던 책. 지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 역시 MBTI 검사에 따라 직업군을 연결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언젠가는 본인의 MBTI 결과를 가지고 직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도 있다. 심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은 MBTI는 정말 매력넘치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여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의 저자 역시 이 재미난 검사를 가지고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느 누가 고전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의 성격을 MBTI 검사와 연결을 한 적이 있었는가. 생각지 못한 도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문구를 떠올렸고 자연스레 아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MBTI 관련 책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고전들 속에서 일관된 성격을 보이는 32인의 등장인물을 추려냈다.

이 32인의 인물들은 16개 타입을 대표하고 있는데 하나의 성격 유형 당 2인의 인물을 소개한다.



나는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한때 나의 성격유형이 ISFJ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부분을 먼저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독자분들도 이 책을 읽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본인의 성격유형을 먼저 찾아볼 것이다!

각 성격타입별로 2개의 고전과 그 속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개하는 방법은 나로 하여금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이 인물이 나와 성격이 같다고? 왜? 어째서? 해당 부분을 읽어보면서 나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닮아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 읽어본 고전들이 많지만 이 책을 보면서 고전의 어느 부분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니면 잊어버리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성격유형을 살펴보기에 앞서 각 고전의 원 저자에 대한 소개와 작품이 쓰여지게 된 시대적 배경,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 등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다만 원작 소개가 이 책의 본분이 아니므로 상당히 축약되어 있거나 일부를 발췌한 형식이다. 하지만 이미 이 책에서 소개된 고전을 읽어본 독자라면 내용을 상기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 책에서는 모든 주인공에 대한 성격을 MBTI와 연결짓지는 않는다. 저자가 지목한 인물에 대한 성격분석만이 소개된다. 하지만 핵심 인물의 성격을 묘사할 때 필요하다면 배경인물의 성격도 충분히 소개해준다.

해당 인물의 성격분석이 끝나면 그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고전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서평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이 주는 묘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우리의 지식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카라마조프는 터키어로 '검다'는 뜻인 '카라'와 러시아어로 '더럽히다'라는 뜻을 갖는 '마지찌'의 합성어라는 것과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대중들이 해당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 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라는 고급 상식까지도 알려준다. 한 마디로 이 책을 읽으면 한 번에 32개의 고전을 읽으면서 일반 상식까지 얻을 수 있다.

최근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개츠비의 성격 해석이 좀 어려웠다. 특히 옛 연인 데이지가 교통사고를 냈음에도 그 부분을 끝까지 덮어주며 죽임을 당하는 대목에서 약간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는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를 읽고 나서 나의 의문이 조금 해소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공감이 되지 않는(아마 내 성격 유형의 정반대일 것이다.) 성격의 소유자도 보이고 생각만 해도 너무나 무서운 성격의 인물들도 보인다.

중간중간 살아있는 듯한 느낌의 연필로 그린 초상화들이 나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님의 그림들이다. 특히, 「1984」의 오브라이언(p. 73)과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p. 147)의 초상은 그야말로 걸작이다. 책 속의 오브라이언이 나를 심문하려고 실제로 앉아있는 것 같다.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조르바의 초상은 나도 그와 함께 자유를 누리고 싶게 만든다.



한참 책에 빠져있노라면 어떤 성격 유형에 대한 인물소개인지를 잊어버리게 되는데 각 페이지마다 친절하게 내가 보고 있는 성격의 타입, 어떤 작품과 인물인지가 아래 기입되어 있다.

(각 타입별로 연결되는 스토리들이 아니기 때문에 하던 일을 하다가 관심이 가는 타입만 하나씩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전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는 이 책의 전제는 정말 기발한 발상임에 틀림없다. 앞서 나의 심리학 교양 수업 에피소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같은 성격유형이라 하더라도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다. 더 나은 나로 발전하기 위한 도구로써 MBTI를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잘 짜여진 지침서와 같다.

지금까지 고전, 아니 어떤 책이든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성격에 대해 한번도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분명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쫑쫑이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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