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깊이의 바다
최민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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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깊이의바다 #최민우 #은행나무


사단법인 ‘도서정리협회’라는 이름을 가지지만 실제로는 여러 미스터리한 사건을 맡아 수행하는 단체의 한 지부에서 노아와 근무하는 경해. 노아는 어느 날 말없이 종적을 감추고 혼자 남은 경해에게 자신의 엄마를 찾아달라고 노아의 명함을 들고 나타난 한별. 한별은 자신의 엄마가 불로불사의 존재이며 어떤 이들이 자신의 엄마를 찾아 죽이려고 하기에 노아를 찾아왔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한별의 의뢰를 받은 경해의 닷새 동안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별의 의뢰 이후로 협회 매니저 곰 선생은 경해에게 많은 곳에서 갑자기 무더기로 드러나는 유골들에 대해 조사하라는 일을 맡긴다. 그러면서 노아가 찾았던 좌우가 바뀌지 않는 거울의 행방을 찾는 의뢰와 함께 날지 않고 바닥에 무수히 모이는 새 떼들의 등장 등 여러 이상한 현상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십 년 전 칠백 여명의 사람들이 사라진 ‘대실종’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별개로 보이던 여러 사건들이 결국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나가고, 그런 상황 속에서 경해는 문을 열고 사라졌던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세상의 혼돈을 누군가는 세상에 박힌 ‘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쐐기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 쐐기가 만들어내는 틈으로 인해 균열을 일으키는 세계, 그렇지만 그 쐐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세계의 역사는 비극적이기만 하다. 


책에서 등장하는 세계는 실재이면서도 환상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미스터리인지 판타지인지 스릴러인지 분간할 수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여러 사건들이 종국에는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또한 책 속에 은유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이 소설의 깊은 여운을 만들어 낸다. 대실종을 만들어낸 쐐기로 인해 비극을 겪은 사건들, 그런 쐐기를 만들어낸 최초의 비극의 역사. 결국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을. 그럼 우리는 과연 쐐기를 바로 잡을 권리가 있는 걸까. 노아의 말대로 누군가에게만 부당하게 주어지는 세계 속 삶이라면, 그런 세계가 꼭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씁쓸해졌다. 처음에는 책을 읽으며 왜 이런 제목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경해의 말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나에게 보이는 것은 발목만큼의 파도뿐 인 것을. 그러니 타인을 내 잣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멜빵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가 신발을 벗은 채 모래 위에 서서 해변까지 밀려온 약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가온 파도가 아이의 발목 높이까지 무심하게 차올랐다가 도로 물러갔다. 마치 자신의 깊이를 다 보여줄 생각은 없다는 양. 한 인간의 깊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바다의 해변에 서 있을 뿐이다. 가끔씩 밀려와 발목을 적시는 파도에 마음이 가벼이 흔들리도록 자신을 내맡기면서, 언젠가는 저 바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헛된 희망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평생 그 해변에 머물다 갈 생각이면서. - P183

노아가 받아쳤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부당하게 짊어진 역사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 권리가 있어요. 더 큰일이 벌어진다고요? 세계가 멸망한다고요? 그런 세계가 앞으로 지속될 가치가 있을까요? 왜 저 사람들이 그걸 생각해야 합니까?"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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