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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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는세계 #미우라시온 #은행나무


요리에 열정을 가진 남자 후지마루와 식물을 사랑하는 여자 모토무라의 이야기. 책 소개만 읽었을 때는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두 남녀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정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모토무라가 속해 있는 T대학의 마쓰다 교수 연구실에는 그렇게 각자 식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후지마루는 근처 작은 가게인 엔푸쿠테이에서 요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보여준다. 인간끼리 나누는 교감의 감정만을 사랑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열정 또한 사랑으로 지칭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빠진 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강한 탐구심과 정열을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또 어디 있을까. 후지마루에게 빠진 모토무라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또한 그 구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토무라의 마음도 동시에 이해가 갔다.


둘의 이야기가 주축이긴 하지만 연구실 수장인 마쓰다 교수의 과거사가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결국 각자의 마음의 상처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 그 상처를 완벽히 치유하진 못하더라도 어떻게 견디고 그로 인해 또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있어서 몰입이 많이 되는 부분이었다. 


또 식물학 연구실이 배경이 되다보니 모토무라의 연구 과정과 그 결과, 또 세미나의 모습과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식물학 에세이라고 지칭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모토무라의 애기장대 유전자와 관련된 실험 설계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유전법칙에 대한 설명도 함께 제시되어 있어서 그런지 마치 모토무라 옆에서 실험을 지켜보는 조수가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후지마루도 그런 느낌이었겠지. 비록 요리에 대한 지식만 가득한 청년이지만 그렇기에 더 순수한 마음으로 식물을 바라보고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연구자들이 너무 미시적인 관점에서 식물을 연구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밖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즐길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따뜻한 봄이 되어 생명력을 발산하는 다양한 식물들을 즐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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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후지마루는 주눅들지 않는다.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앞에 두고 ‘이것과 저것을 조합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 쓰부라야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지는 것을 보면 자신도 재료 다듬기나 손님 접대에 조금은 공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P17

후지마루가 힉물학을 흥미 있어 하는 데다가, 식물을 보고 나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기쁨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토무라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세계를 대하는 후지마루의 모습을 보며 자기가 존중받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후지마루가 엔푸쿠테이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요리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서로가 열정을 기울이는 세계는 달라도 언제까지나 함께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23



다만 나에게는 일생에 한 번 있는 연애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식물 연구’일뿐이야. 설령 실패로 끝났다 해도, 전력을 다해 사랑한 기억과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닐 거야. 나는 내 속의 정렬과 사랑을 모두 걸고 식물 연구를 상대로 연애를 하고 있었어.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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