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가는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첫 에세이. 기존에 여러 곳에서 기고했거나 자신이 쓴 일기들을 모아서 낸 책이라 그런지 책을 전체를 통과하는 하나의 큰 키워드가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작가의 취향과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자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을 써보고 싶다고 하며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라고 말한다. 중간부터 읽어도 되며,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되는 책. 물론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발췌독을 하지 않는 편이라 결국 완독했지만, 나는 일본 문학을 거의 읽지도 않았고 교토 및 도쿄 등 일본 지리도 잘 모르기에 모르는 내용을 그렇구나 하면서 대강대강 읽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사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데, 이 책은 부담 없이 가볍게 읽어 나갔다.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작가의 일기장을 몰래 엿본 느낌이 들었다. 마감이 올 때 커피를 마시면서 그래도 어쨌든 소설을 쓴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지겹다고 하면서도 어쨌든 출근해서 일하며 하루를 보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위안을 얻는다.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는 그의 일기를 읽으며 나의 올해 목표였던 매일매일 읽기 쓰기를 떠올려 본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밀스럽고 잡다한 생각의 집합인 일기를 공개할 수 있는 그런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면서도 또한 부럽다. 


솔직담백하면서도 가끔은 진중하게 내 마음을 치고 가는 글을 읽으며 며칠을 그렇게 재미있는 밤을 보냈다. 나중에 작가가 그동안 쓴 소설을 읽어 봐야지.








간혹 우리는 유연성을 잃고, ‘세상은 이러이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이러이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사실 없다.

- P48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한데, 그렇다고 시작하는 방법에 지나치게 연연하다보면 결과적으로 겉돌기 쉽다. 어깨에도 손에도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냥 시작하는 것이지,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 P147

소설을 읽을 때도 ‘많이 읽자’ 혹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배우자’ 등 쓸데없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아무리 재미난 소설도 금세 따분한 소설이 되고 만다.

소설을 읽다가 잘못 해석했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으면 될 일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 도중에 다 보지 못한 곳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가면 그만 아닐까 - P362

나는 연말연시가 되면 시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특히 소소하게 할 일들이 쌓여 있을 때나 중요한 일이 마음먹은 만큼 진전되지 않을 때는 이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아무런 소득없이 보내는 날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그냥 하루가 다 가버리는 까닭이다. - P377

게으르게 살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게을러질 수 있다. 숨만 쉬고도 살 수 있다. 내가 소설을 쓰지 않는다 해도 태양은 뜨고, 또 질 것이다. 계절은 변하고 하루하루가 찬란할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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