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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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아, 작가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미워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상대를 미워하려면 일단 관심이 있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이다. 물론 작가는 지금도 20대이지만 20대 초년생 때 쓴 일기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일기와 소설의 경계라고 해야 할까. 일기라고 하면 단순히 여러 일상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 추상적이고, 소설이라고 하기엔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완전히 허구라고 할 수도 없는 글들. 여러 독특한 표현들이 생소하면서도 작가의 솔직한 마음들이 절절하게 들어있기에, 이래서 시인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이래서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 역시 들었다. 되돌아보면 청춘이 미화되어 보이겠지만, 사실 청춘의 시기를 보내는 그때 그 시절이 늘 밝고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어 보인다. 청춘의 삶 속에서 내면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면서 자신에 대해서 올곧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때의 나는 과연 내 자신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해봤던가.

 

어쩌면 마음속에 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으면서 작가는 소위 마음의 병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내면의 아픔을 보여주는 글을 남에게 공개한다는 것부터, 큰 용기가 필요한 행동 아닐까. 이를 통해 작가가 조금씩 자신의 우울을 극복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통해서, 작가는 정말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많은 사랑을 하고, 많은 상처를 받고, 그 마음을 속에 가만히 담아둘 수가 없어서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보영 작가의 시집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의 시 속에는 어떤 여러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에게 일기는 사실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다. - P9

시가 뭐냐고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대답을 구하다가, 시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거냐고 다시 묻기에 지나치게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었다고 풀어 설명하고 좀 후회했다. - P22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두렵겠지. 인생이 다시 망할지도 모르니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 P25

슬픔의 용도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슬픔은 오롯이 슬픔이기만 하면 좋겠다. - P48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내 속도대로, 내키는 대로, 침대와 벽 사이 아늑한 공간에서 여생을 보내는 나의 널브러진 브라자처럼. - P74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반만 참이다. 시간은 독이고 시간은 약이기 때문에, 시간은 양날의 칼같이 무서운 놈이다. 뱀에 물렸을 때는 시간이 약이 아니다. 방치는 독이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상처를 곪게 한다. - P124

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 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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