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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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달 넘게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젠 집콕생활 알뜰살뜰하게 시간 보내기에 요령이 생기는데요. 그동안은 바빠서 하지 못했던 릴레이 책읽기에 푹 빠진 요즘 도서는 혜경궁 당호로 더 유명한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홍씨가 쓴 한중록입니다.

조선 역사상 유래없는 세자의 폐위와 동시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의 사도세자, 어릴 때 읽어본 한중록은 어린이용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라 고어들이 생략되어 있었는데 스타북스의 한중록은 거의 원문 그대로를 살려내 생생한 그 때의 이야기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어요.

한중록은 총6편으로 이어진 궁중일기인데요. 궁중여성이 남긴 방대한 일기는 오늘날에도 역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어요. 세자빈이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궁중에서 살아온 날 들, 시누이간 비빈간 암투와 친정이 몰락하는 과정 등 혜경궁홍씨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얽힌 사람들이 이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제1편~3편까지는 어린 시절 간택되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1762년 임오화변까지의 18년간의 일기입니다.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어린시절 사도세자는 부모인 영조와 선희궁이씨의 손에 자라지 않고 경종을 모셨던 상궁과 나인들이 양육을 한 시점부터 부자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데요.

경종과 영조는 이복형제 사이로 당파색도 다르고 경종이 붕어할 당시 영조가 배후로 지목된 일이 있어 경종을 모셨던 궁녀들은 영조를 좋게 평가했을리 없겠죠. 영조는 그들을 아량있게(?) 다시 궁중으로 불러들여 세자를 양육하게 함으로써 자신은 경종의 독살설과 무관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빗나가 영조나 생모인 선희궁이씨가 세자처소로 오면 궁녀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어 두 부부는 친아들임에도 방문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어쩌다 한 번 보게 되면 공부로 심하게 다그쳐 영조를 무서워 했다고 하네요.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라면 어린 시절 부모와 어떤 유대감을 갖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게 좋은지 생각해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혜경궁홍씨는 10세라는 어린 나이에 간택되어 궁궐 생활을 시작해요. 왕실은 민가보다 조혼하는 풍습이 있어 12세 전후 다소 이른 나이에 혼례를 합니다. 지금으로치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시어른을 모셔야 하는 상황. 혜경궁이 혼인을 치를 땐 시아버지인 영조. 시어머니인 정성왕후와 선희궁이씨. 시할머니인 인원왕후(숙종의 2계비). 무려 20살이나 많은 손윗동서인 현빈조씨. 시누이 9명까지. 정말 편치 않은 시집 생활이었을 것 같아요. 새벽에 일어나 문후를 들 땐 혜경궁홍씨는 시간에 늦을까봐 조마조마하며 서두르고 준비하는 반면, 사도세자는 느긋한 성격에 민첩하지 못한 성격이라 아버지인 영조가 혼인 이후부터 세자의 행실을 싫어하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군주로서는 훌륭하나 아버지로선 자녀에 따라 극과극의 차별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버지, 그것을 지켜보는 혜경궁도 얼마나 답답하고 편치 못했을까 감정이입이 되더라구요. 제4편 이후로는 임오화변 이후로 나락으로 떨어진 혜경궁과 친정. 특히 시어머니인 정성왕후 사후에 간택되어 들어온 계비 정순왕후 김씨 일가와의 다툼으로 권력에서 멀어지며 친정식구들이 하나둘씩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가거나 죽게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원처럼 돈다고 하지만 임오화변 전후 얽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이들 부부에 해가 되는 인물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성격의 차이로 시작한 두 부자간의 간극이 주변의 인물들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지고 급기야는 하나 밖에 없는 친아들을 죽여야 했던 유래없는 비극. 28세에 남편을 잃고 81세가 될 때까지 무려 53년간 홀로 살면서 친정의 몰락. 아들 정조와 둘째딸 청선군주의 죽음까지 지켜봐야 했던 일생은 아물기만을 기다려 다시 같은 자리에 생채기를 내는 가혹한 형벌을 받는 것 같았어요. 손자인 순조 이후로 조선왕조도 그녀의 친정처럼 같은 몰락의 운명을 길을 걸으며 약 200년 후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요. 짧았지만 혜경궁의 소망대로 아들과 손자는 조선 후기 왕조의 마지막 불꽃을 피웠고 그것이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의 삶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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