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종교라는 것은 결국 ‘체험‘
문제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각성도없고 검토도 없는 믿음은 헛된 믿음일 수도 있고, 많은 경우 우리의 짧은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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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내가 생각하는 나입니다. 델포이 신전의 앞마당에는 그리스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가 새겨져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한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죠. 나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모든힘의 원천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삶의 의미와 생각과 행동 모두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에요. 순전히 나를 위해 살아갑니다. 내가 있고 세상이 있지, 세상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에 나오는 ‘신독께‘을 평생토록 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신독이란 혼자 있어도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스스로를 삼간다‘는 뜻인데요. 유학에서 말하는 개인 수양의 최고 단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중용』에서는 "숨겨져 있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 아주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남이 보든 안 보든 괘념치 않고 인격을도야하는 사람에게는 삶이 수행이고 수행이 곧 삶입니다. 

도는 앞서 말씀드린 본성의 길이며 덕은 그러한 본성을실현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자신 안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그 마음이도이고 진정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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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신비독일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1869~1937년)는 지금 종교학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그의 책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종교를
‘엄청나고도 매혹적인 신비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 라는 간략한 라틴어로 정의했다. 종교란 근본적으로 ‘성스러운 것the Holys‘
혹은 그가 직접 말을 만든 ‘누미너스한 것the Numinous‘ 에 대한 체험으로서, 이 체험이 바로 위의 세 가지 낱말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궁극 실재와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변화의 체험 필자는 『예수가 외면한 그한 가지 질문 에서 종교의 핵심이 "궁극 실재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체험"이라고 했다. 종교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라면 그 종교를 따르는 이들이 이러한 변화의 체험에 의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늠름하게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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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비유를 통해서도 금세 눈치 챌 수 있지만 요가 yoga란 yuj(붙잡아 매다. 결합하다)라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 말을 몰고 가는 마부가고삐로 말을 통제하듯 요가는 우리의 마음을 한 곳에 단단히 붙잡아맨다. 만약 말이 마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뛴다면 수레가 엉뚱한 길로 가거나 길 밖으로 굴러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조절되고 통제되지 않는 마음은 우리를 방황하게 만들고 신과의 일치를 향해 가는 영혼의 오솔길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촛불은 부드러운 미풍에도 꺼진다.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에 의해 점화되기 때문이다.
반딧불이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그 빛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요가는 궁극적으로 자기 안에 광휘로 빛나는 참자아‘ 를발견하고 우주의 주재인 ‘신‘과 일체가 되어 그 희열을 맛보는 일이다. 신의 궁극적 본성인 희열, 융융한 희열에 동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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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이라는 말에 그가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정 그러시면 제 소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를 통해서 좋은 일이 이루어지되, 제 자신이 알아차리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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