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傳 3 -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역사 한국사傳 3
KBS 한국사傳 제작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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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전’ 은 ‘역사의 대중화’란 화두로 시작된 프로가 좋은 반응을 얻어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본문) 역시 책은 재미있고 읽기 편했다. 평소 허난설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한국사전3’에 읽게 되었다.

  평소 알던 역사와 다른 시각으로. 또한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어 나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백제를 재건한 중흥군주 무령왕 - 일본 천황이 기자회견에서 ‘선조인 칸 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느낍니다“(본문) 언젠가 신문에 난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책을 통해 보게 되니 새삼 우리 역사의 자긍심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일생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을 갱위강국의 꿈 무령왕은 집권 20여 년 동안 오직 그 꿈을 향해 달렸고 마침내 이루었다.‘(본문) 한 나라의 지도자로국가 발전에 치밀한 전략과 웅대한 기지가 백제를 다시 강대국으로 설 수 있게 만들었다.

 여자여서 불행했던 시인 허난설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이 가는 인물로서 애착이 간다.

개방적이고 남녀차별이 전혀 없는 집안에서 자란 허난설헌은 재능을 인정해준 가족들 덕분에 마음껏 시를 쓰고 꿈을 키워갔다.’(본문) 이렇게 그녀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조선에서 허난설헌의 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본문) 16세에 혼인한 허난설헌의 꿈은 이때부터 불합리한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시를 무기로 시대와 싸우며 불평등하고 왜곡된 현실에 대한 내용의 시를 많이 담고 있다.

시 쓰는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은 시어머니, 무능한 남편. 또한 병으로 어린 아들,딸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 정신적인 지주 였던 오빠의 죽음 등 그녀의 불행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26세때 남긴 시 한편이(본문93쪽) 그녀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
27세때 한 많은 생을 마감한 허난설헌. 그녀가 남긴 시는 당시대의 조선이 아닌 명나라에 전해져 이름을 날리게 된다. “사회적 폐단을 신랄한 문체로 풍자한 연암 박지원 역시 조선의 여성으로서 허난설헌이 시를 짓는 일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조선은 허난설헌의 시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본문) 뛰어난 재주로 도저히 그 시대에 동화 될 수 없었던 한 여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불행 했는지 애절한 마음으로 읽었다.

닫힌 시대의 젊은 열정 광암 이벽
조선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래됐을 때 선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본문)
천재적인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이벽. 억압과 차별이 난무 하던 조선시대. 변화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자리 잡던 지식층에 의해 천주교는 새로운 바람이 일게 된다.

당 시대 사상이 유교 였던 조선시대.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천주교는 박해를 박게 된다. 그 중심에 이벽이 있다.

이벽의 아버지 이부만은 문중 어른들에게 불려가 수치스러운 문책과 족보에서 제명시키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본문) 천주교와 절연하지 않으면 목을 매겠다는 아버지. 어떠한 설득에도 요지부동 이었던 이벽은 효는 절대적인 규범으로 아무리 신앙의식이 확고하더라도 버티기 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 이부만은 이벽을 집안에 가두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다. 이벽은 외부와 단절된 채 15일간 단식 중 서른둘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사망에 여러 가지 설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벽은 성리학만 고집했던 조선의 닫힌 시야를 열고자 했지만 당시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본문)

발해는 황제의 나라였다 문왕 대흠무
대조영의 손자이자 발해의 3대 왕이었던 문왕 대흠무. 대흠무가 황제라는 호칭을 쓴 것은 발해가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선언한 것으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일이었다(본문)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나라를 완성한 정복자로서 당시 당나라에서도 함부로 발해를 건드리지 못했다. 발해는 강한 자신감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해동성국’(바다 동쪽의 강성한 나라)를 이루었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민생군주, 세종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 6년 가뭄으로 강원도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사라지고 농토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농업이 국가 경제의 기반이던 시대, 연이은 흉년은 곧 국가적 위기였다.(본문)

백성들의 삶이 기근으로 피폐해지자 거처하던 곳을 버리고 경회루 한쪽에 초가집을 짓고 무려 2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을 과학적인 농법 개발로 발전시켜 나가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 백성의 고통을 같이 한 임금.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정치 이념과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대왕의 지도력은 현실정치를 바라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은 조선의 왕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당시대의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고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평생을 굳은 신념으로 꿈을 펼치며 생을 마감한 반면 뛰어난 재주와 천재성을 가졌지만 시대가 앞선 사상을 포용하지 못해 그 꿈을 펼쳐 보기도 전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역사적 인물들. ‘한국사전3’ 이 책은 한층 발전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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