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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죽음을 앞둔 서른여덟 작가가 전하는 인생의 의미
니나 리그스 지음, 신솔잎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책을 읽기 전 항상 작가 소개 내용을 먼저 읽는다. 특히 저자의 연령대가 어느 정도인지를 제일 먼저 보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으려고 할 때마다 습관처럼 그렇게 저자의 나이를 확인하고 한다. 나보다 인생선배인지, 또래인지 아니면 후배인지 꼭 그것부터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 책의 저자는 197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묘한 공감대가 생겨났다. 물론 같은 한국땅은 아닌
머나먼 곳이지만, 내가 태어난 해와 같은 해, 한국식의 12간지에 의하면 뱀띠해에 해당되는 그녀의 출생년도를 알고나니 마치 그간 잊고 지낸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책을 읽기도 전에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저자가 나와 나이가 같다는 이유가 물론 제일 크기도 했지만, 두 아이의 엄마라는 또 하나의 나와 같은 공통점을 찾았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결론을 이미 알고 책을 읽게 되니,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것조차 무척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녀가 투병중에 힘겹게 써내려간
문장들이니, 어찌 보면 남은 생명을 쪼개고 쪼개어 이 문장들에 하나 하나 심어두었다는 생각조차 들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글자 한 자 허투루
읽혀지는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저자인 니나 리그스는 시인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5대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흡인력이 있는 문장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책의 탄탄한 스토리 전개 및 내용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듯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어지는 문학도로서의
삶이 펼쳐질 수 있었던 저자는 38살의 나이에 전이성 유방암 선고와 함께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그래도 그녀는 병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이성 유방암 환자로서의 삶을 공유하며 남은 시간들을 적극적이다 못해 전투적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하였다. 남편의 재혼까지 걱정해 줄 정도로 살뜰히 배우자를 챙기는 모습,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픈 와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내게 참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들에게 엄마의 병에 대해 숨김없이 솔직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뭘 알겠냐 싶은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할 법도 한데, 저자가 아이들에게 담담히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책을 읽는 내내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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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가 걸음을 멈추고 내 눈을 바라봤다.
" 엄마, 진짜야? 괜찮아졌어?"
(중간생략)
" 지금은 괜찮아. 하지만 엄마 암이 다시 좋아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이들은 이 사실을 잊은 듯 했다. 차에 타자 두 아이 모두 울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나는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 중간에 앉아 한 팔씩 두 아이를 감쌌다.
(중간생략)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암센터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다. 존은 팔을
뒤로 뻗어 내 무릎을 한 번 쥐었다 놓은 후 음악의 볼륨을 높였다. 아이들은 머리를 내게 기대왔고 우리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향해 함께 달려
나갔다.
- 본문 353~354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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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슬펐던 대목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그것도 아이들에게 담담히 말해야
하는 그 순간에 엄마인 저자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저자인 니나 리그스는 아침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맨 앞에 저자의 5대 조상인 랄프 왈돌 에머슨의 아침에 관한 글귀가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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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온 세상을 힘찬
파동과 생명력으로 가득 채우는 시간.
촉촉하고,
따뜻하며, 반짝이고,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그 시간은 나를
기쁘게 한다.
바로
아침이다.
찬란한 시간이
병약한 몸에 갇히지 않고
세상 널리
퍼지는 그때가 바로 아침이다.
- 랄프 왈돌
에머슨, 1838년 - |
아침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그녀는 2017년 2월 26일 해가 떠오르기도 전인 아침 6시에 눈을 감았다고 한다. 나도 하루 중
동이 트는 무렵의 아침을 참 좋아한다. 밤새 세상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어둠이 걷혀지고 따스한 아침햇살이 온 세상을 비추이려고 준비하는 그
시간, 밤새 충전된 에너지로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샘솟는 그 시간이 나도 참 좋다. 온 가족이 다 잠들어있고 나만
깨어있는 그 시간에 가족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해 주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친구같은 그녀, 니나 리그스!
훌륭한 작가요, 든든한 아내요, 위대한 엄마로서 멋지게 살단 간 그녀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