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책 제목도 솔깃했지만, '빅뱅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라는 부제를 보는순간 가슴이 뛰었다. 평소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확실하게 비교 분석한 내용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답을 알 것만 같은 묘한 기대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인 나로서는 당연히 창조론을 찰떡같이 믿고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교과서에서는 진화론을 밀고 있는 데다가 나의 지인들 대부분은 진화론을 주장하는지라 누군가가 시원하게 창조론에 힘을 실어 줄 이론을 내세워주면 좋겠다는 갈급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이유도 한 몫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배철현 교수님은 고전문헌학자이다. 프로필을 살펴보니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고대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한다. '종교학과 교수'라는 직책에 나의 기대는 커졌고, '고대 셈족어'를 연구했다는 프로필 내용에 더더욱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래서인지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왜 그렇게 긴장되고 떨리던지........  다음 페이지에 꼭 뭔가 답이 있을 것만 같아서 쉽사리 책을 덮지 못하고 '한 페이지만 더 읽어야지, 한 페이지만 더.......'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결국 며칠만에 책을 다 읽어버렸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어렵고 무거운 내용이라 평상시에는 소화시키기 어려워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빨리 답을 알고 싶었다. 마치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다음 편 드라마를 손꼽아 기다리는 시청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밀당의 고수다. 성경의 내용을 인용하며 창조론에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가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진화론에 힘을 실어준다. 그도 그런것이 성경책 저 구석에 있는 내용을 쉽게 꺼내는가 하면, 성경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종교적 색채 짙은 단어를 사용하는 탓에 '역시 종교학과 교수이시니 창조론을 주장하시겠지!'싶다가도, 해박한 과학적 지식 및 상식과 함께 어느덧 글의 내용은 진화론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과 창조론의 어느쪽으로도 치우침 없는 정중앙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가니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이러니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승부를 알 수 없는 줄다리기 시합의 현장에 참여한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 인간은 의미를 찾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동물이다. 나는 왜 사는가? 이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그것은 바로 이타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고도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인간에겐 신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

                                    - 본문 12쪽 인용 -

 

         "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이지만 현생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화석의 발견으로 침팬지와 인류의 조상이 서로 다른 진화의 변천을 겪었으며, 현생 인류는 시원을 알 수 없는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음이 밝혀졌다."

                                     - 본문 97쪽 인용 -

 

 

 

      

           그리고 저자는 말을 많이 아낀다. 각 챕터 안에 또 다시 소주제로 분류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소주제들이 독자의 호기심을 제법 끌 뿐 아니라, 정말 그 답을 알고 싶은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처음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이 세계의 근원을 찾아서', '신이 숨겨놓은 우주의 법칙' 등인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명쾌하게 전개된 글의 내용을 보고 싶건만, 저자는 독자에게 많은 걸 양보하고 있다. '기-승-전'까지 독자의 관심도를 최대화시킨 후 '결' 부분에서는 은유적인 표현이나 시를 통해 마무리지음으로써 판단은 독자가 하도록 과제를 주니 말이다.

          " 생명이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이 광활한 우주 가운데 단 하나, 지구에만 생명이 존재할까? 우리가 다른 생명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과 닮은 모습의 '외계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중간생략)

            유대-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은 서양인들은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오직 지구에만 생명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한편 무신론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확인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강해서, 다른 생성에서의 생명 존재 가능성을 일축해버린다.

            이런 지식은 과학적인 자기기만이다. 현대의 과학은  방대한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관찰하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 본문 43쪽 인용 -     

 

 

 

 

           저자의 입장이 진화론인지, 창조론인지 나 혼자서 끙끙거리고 고민하다보니 어느덧 책의 내용은 끝이 나고, 끝에 있는 에필로그를 읽게 되었다. 순간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 인류의 위대함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전략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비롯한다. 모세, 소크라테스, 붓다, 예수, 단테, 셰익스피어,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책이나 전통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신은 항상 비겁한 자들이 아니라 자기를 깊이 관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있게 표출하는 소수를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 그 소수가 쇼베 동굴, 알타미라 동굴 그리고 라스코 동굴에서 그림을 그린 우리의 조상들이다. 이들의 그림은 수만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맞춰 온 우주의 선율이 연주되기 때문이다."

                              - 본문 411~412쪽 인용 -

           저자는 인간 본성의 핵심이 '이타적 유전자'라고 말하고 있다. 문명과 도시, 문자와 언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타인과 공동체의 아픔, 동물과 자연의 아픔을 자신의 일부로 느낀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처럼 공감했으며, 그들을 위해 정교한 장례를 치르기까지 하였다. 즉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언제 생겨났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를 짚고 싶었던 것 같다. 생물학적인 인간발생의 기원이 아닌 영적인 인간의 발생시점이 어딘지 저자는 그걸 말하고자 하였으며, 그 이후로 인간이 변화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타심'이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타심으로 인해 지금까지 발전해왔으며 그동안의 시간이들이야말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것.......  새삼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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