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둑 (별책: 글도둑의 노트 포함) - 작가가 훔친 문장들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학창시절 때부터 글쓰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독후감 쓰기 교내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고 담임선생님께 칭찬을 받게 되었다. 그 일이 나에겐 너무나도 좋았나보다. 담임선생님의 "**이는 글을 잘 쓰는구나." 이 한 마디에 나의 자존감은 그만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록 높아져버렸다. 원래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글을 잘 쓴다는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정말 '글을 잘 쓰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그 이후로 문예대회가 열렸다하면 밤새 용을 써서 완성을 할지언정 꼭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자주 쓰다보니 점점 문예실력은 늘어갔고 급기야 전국어린이편지쓰기대회에서 큰상까지 받게 되어 전교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되는 등 정말 나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글을 잘 쓰는 아이'로 자리잡혀(?)가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고, 급기야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된 나머지 시 쓰기를 즐겨하시는 그 국어선생님의 마음에 들고자 이젠 시쓰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중학생 시절동안 교내 문예대회 시분야 당선자 명단에 내 이름은 자주 올라가게 되었고, 점점 시쓰기에 재미를 붙인 나머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시 쓰는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였다.

      이렇듯 좋으신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속에서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점점 글 쓰는 실력도 자리잡혀갔다. 그런데 시는 정말 어려웠다. 한 편, 두 편 써 나갈수록 소재는 고갈되어갔고, 점점 뭔가 비워지는 것만 같아서 한창 글쓰기가 힘들던 무렵........ 우연히 학교 교지를 정리하게 되었다. 옛날 선배들때부터 있던 오래전 교지들을 폐지로 버리는 작업을 하던 중, 선배들의 손때가 담긴 글들로 가득한 교지를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선생님의 허락하에 내가 10여권이 넘는 교지들을 가질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집에 가서 찬찬히 읽던 중, 좋은 시, 좋은 글들은 대학노트에 한 자, 한 자 베껴써보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글들을 한 번 따라써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쓰다보니, 나도 모르게 글쓰는 흐름, 시의 얼개 등이 자리잡혀감을 느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요즘 한창 유행하는 '필사'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가 훔친 문장들 글도둑'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제목만 보는데도 그 때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선배들이 써내려간 숱한 글들을 보고 하나 하나 베껴 써두었던 좋은 문장들이야말로 내가 훔친(?) 문장들이 아니었나 싶다. 아닌게 아닌게 그렇게 대학노트에 베껴 써놓은 수많은 글귀들은 이후 내가 글을 쓸 때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좋은 뿌리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자치 '표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내 생각들, 내 경험들로 나만의 글을 쓰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건 사실이다. 이 책 겉표지 앞장에 저자가 써놓은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를 보니 필사를 하던 그 당시 내 노력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 글 쓰는 능력은 생각하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문장을 연결해서 쓰는 프로세스를 습득해야 합니다. 이 책은 좋은 글과 문장들을 따라 쓰면서 좋은 문장이 가진 구조를 내 것으로 만들고, 그와 함께 내용을 채우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한 필사를 넘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자기만의 내용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배치한 것입니다."

              - 표지 인용 -

        '자기만의 내용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참된 필사의 목적이라는 것....... 나는 이미 한 번 체험해보았기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저자는 세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첫째, 매혹적인 문장의 의미를 파악한다.

        둘째, 그런 후에 중요한 명사나 형용사 등을 바꾸어서 표현해본다.

        셋째, 문장의 뒤에 나올 수 있는 내용을 생각해보면서 이어쓰기를 해본다.

        쉽게 말해서, 좋은 문장 구조를 익힌 다음 거기에 자기 생각을 담아 내라는 게 핵심이다. 내용을 매력적으로 채울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임을 저자는 재차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하나의 팁을 소개하고 있다. '눈앞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쓰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쓸 수 있기 때문에 글이 좀 더 탄탄해질 수 있음을 저자는 살짝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보통의 필사관련 책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좋은 문장들, 좋은 글들을 따라 써보게 함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훔친(?) 그 문장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그 문장들로 주제가 펼쳐지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

       네가 오후 4시에 오기로 했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잘 알겠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문장이 가슴 깊이 다가올 겁니다. 기다린다는 것,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지요.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힘겨운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부푼 가슴을 떠올리면서 위 문장을 따라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 본문 53쪽 인용 -

       안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글귀라 반가웠다. 저자는 이 내용으로 '문장을 읽으면 사람의 본성이 보인다'라는 주제를 펼쳐가고 있다. 오기로 한 시간은 오후 4시로 정해져 있고,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진다는 기다림의 기대감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람의 본성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참 매력적인 책이다 싶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문장들부터 시작해서 다소 생소한 다양한 장르의 글들에서 발췌한 여러 문장들을 꼭지로 시작하여 주제를 펼쳐내는 저자의 글재주에 책장도 술술 넘어가지만, 이해 또한 술술 된다. 쉽게 읽혀지면서도 생각을 여러 번 하게 하는 걸 보니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가 보다 싶다.

 

 

 

        문장을 훔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훔친 문장을 응용하는 방법, 생각을 더해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 끝으로 글도둑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팁을 제시하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책의 군데군데 필사할 수 있는 칸들이 있어서 직접 써보기도 좋은데, 섬세한 저자는 혹여나 책을 깨끗하게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부록으로 '글도둑의 노트'라는 작은 노트를 마련하였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용문을 순서대로 제시하여 둠으로써 마음껏 따라 써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 한 권만 읽었는데 많은 장르의 책들을 읽은 기분이다. 이 책을 통해 덤으로 훔친(?) 문장들도 수십여 개가 넘는다. 좋은 문장들을 훔치고 싶은 분들, 아울러 글을 잘 써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이 책만 읽어도 수십여 개의 문장들을 훔칠 수 있으니 더 말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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