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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
주원규 지음 / 인문서원 / 2017년 1월
평점 :
우리 아버지는 군인이셨다.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하셨고 늘 바른 생활이 몸에 배인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깔끔한 옷차림, 흐트러짐 없는 머리모양, 규칙적인 생활 등이다. 항상 반듯한 모습으로 내게 롤모델 같은 분이셨던 아버지는 늘
책을 가까이 하셨기에 아버지가 계신 곳 여기저기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퇴근 후 피곤하실텐데도 저녁상을 물리시면 꼭 쇼파에 앉아서 책을 보시다가
간혹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나를 미소짓게 하신 아버지........ 잠자리에 들 때를 제외하고는 누워계신 모습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함이 곧 생활이셨던 우리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벌써 12년이 다 되어간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실 것
같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몇 년간 참 힘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10여 년이 흐르니 제법 그 상처도 아물어 가고 점점 아버지를
떠올리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자 다시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연산군의 폭군정치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한양을 떠나 강릉에서 칩거하며 그 지역의 어른 역할을 맡아 늘 반듯한 선비로 생을 보내신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 신사임당이 딸이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사임당이 스스로 지어온 당호를 허락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였으며, 그림 또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군자의 길을 가야함을 늘 강조하였다. 시대는 물론 다르긴 하나
우리 아버지 역시 신사임당의 아버지 못지 않으셨다. 딸만 셋이던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그 어느집 아들도 부러워하지 않으시며 우리 세 딸들이 늘
책을 가까이 하고, 공부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학기초가 되면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항상 '전과'와 '수련장'이
들려있었고, 그 당시 새로 출시된 샤프펜슬을 어렵게 구해 공부할 때 쓰라며 세 딸 중 나에게만 슬쩍 갖다주시던 아버지.......이렇듯
신사임당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참 많은 부분이 닮으셨기에 책을 읽는 내내 신사임당의 아프고 저린 마음에 쉽게 동화되어버렸다.
그리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농축적으로 포현되는 부분에서는 그만 눈물이 또르륵 흐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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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후에도 넌 계속 여기에 머무는 거야."
"예. 아버지."
"솔직히 널 보내고 싶지 않다. 마음으로든, 몸으로든."
"아버지......."
"널 보내고 싶지 않았어."
혼인 전날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사임당은 느낄 수
있었다. 깊은 어둠 속이지만 분명히 느꼈다. 아버지가 그 어둠 속에
서 마음 깊이 울고 있다는 걸.
- 본문 5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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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딸들 중 유난히도 예뻐한 둘째 사임당을 곁에 두고자, 명문가의 자손이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서 자란
이원수를 선택하여 데릴사위로 삼는 모습을 보며 사임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늘 같이 계실 것만 같던 아버지는 사임당의 결혼 이후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되고, 사임당은 아버지 3년상을 치른 후, 임신한
몸으로 대관령을 넘어 한양의 시댁으로 들어가게 된다. 뛰어난 그림실력 및 성인군자 못지 않은 기품이 넘치는 사임당에 비해 부족해도 많이 부족해
보이는 아들의 설 자리 없음을 보며 시어머니는 사임당을 구박하게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성과 덕의 소유 여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신명화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사임당은 시어머니의 성정을 탓하지 않는다. 대신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속담에 걸맞는
시집살이임을 인정하고 침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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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침묵이 깊어갈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돋아났다.
어쩔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치솟았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이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
- 본문 10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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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헤아려졌다. 나 역시 타지로 시집온 상황인데다 근거리에 시댁이 있는지라 사소한 일들로 시댁식구들과 부딪힐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역시 '시집은 시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편은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적잖이 있다. 그럴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부터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정집 식구들 생각에 혼자 구석에서 울 때가 있다. 사임당 역시 그러했으리라. 그럴수록 돌아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웠겠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셨더라면......'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수십 번도 더했으리라 싶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남편 혼내주셨을텐데.......'라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사임당도 사람인데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사임당은 남편이 어질고 순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에 대한 정을 어떻게든 쏟아내고 싶은
간절함을 가진 사람이기에 그 정을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한양에 온 이후 남편은 친구들, 주막과 저잣거리 사람들과
어울리며 점점 학문에 대한 뜻, 과거시험에 대한 의지가 사라져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주막집 젊은 여자와 외도를 하게 되고 사임당은
점점 마음에 병이 들기 시작하게 된다. 점점 꺼져가는 자신의 몸 상태를 알게 되어서인지 사임당은 혼신의 힘으로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하고 아울러
자녀양육에 더 힘을 쓰게 된다. 그야말로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한 채, 며느리로서, 예술가로서, 현모로서의 삶에 남은 열정을 다 쏟아부은
것이다. 결국 사임당은 일곱 남매를 둔 채 눈을 감는다. 여섯 살 막내를 두고 가게 됨을 안타까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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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 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아버지의 넓고 풍요로운 등이
그리웠다. 아버지를 힘껏 끌어안고 싶었다. 아버지를 끌어안고 그 역시 힘껏 눈물 흘리거나 환히 웃음 짓거나 소리 내어 웃고 싶었다.
(중간 생략)
옆을 지키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사임당은 눈을 크게 뜨려 애를 썼다. 무릎을 꿇고 옆에 단정히 앉아 있는 현룡의 모습이 잠시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가 희미해졌다. 그 옆에서
선이 몸을 들썩이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음이 여리기는....... 다 자란 사내 녀석이 울면 안 되지. 매창이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 , 우리 딸 고운 손...... 화폭위에 난을 치고 매화를 피워내는 손. 우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제 겨우 여섯 살. 이 어린
막내를 어찌할꼬. "
- 본문 27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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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인지라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의 사임당은 더이상
천재적인 능력의 소유자도 아니요, 학식과 덕망이 넘치는 기품있는 군자의 모습도 아닌 일곱 남매를 두고 먼저 세상을 뜨는 애절한 엄마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아니었으며, 평탄치 않은 시집살이 속에서 예술혼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안타까운 삶을 살다간 여인, 신사임당.......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측은하고 안타까워 자꾸 가정법 문장들을 만들어보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도 수백번을 되뇌었을 '만약에
사임당이 남자였더라면........', 그리고 '남편이 이원수가 아니었더라면......', '아버지 신명화가 오래 살았더라면.......' 등
역사에는 있을 수 없을 가정법을 자꾸 들게 된다. 정말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을 덮어도 가슴 먹먹함이 가시질 않는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엽고.......... 이제 5만원권 지폐를 볼 때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