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상당히 깊이 있는 책이었다. 당연히 호흡도 길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내는데 적잖은 힘이 드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마치 오랜 시간동안 숙성되어 제대로 깊은 맛을 내는 묵은지를 먹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어 사전 한 페이지를 공부한 후 그 페이지를 뜯어먹는 어느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나 역시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낼 때마다 어찌나 집중하며 읽었던지 시트콤의 그 장면이 연상되며 꼭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뜯어먹어야할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제목에서도 예상했다시피 이 책의 흡인력은 상당했다. 오죽했으면 책을 펼치고 난 이후로는 덮기가 힘들었을정도였으니 말이다.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주제에 맞게 하나씩 소개하고 있는 이른바 백과사전식의 전개방식인지라 연속성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덮었다가 다시 읽어도 굳이 흐름을 연결할 필요도 없으니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읽다보니 '하나만 더 읽고 덮어야지......' 하다가도 또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고서 계속 읽게 되는 중독성 때문에 좀처럼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책을 덮을 수 없을만큼 애를 먹인(?) 흡인력 있는 책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는 시작부터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 마디로 금서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자유의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다. 금서목록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사상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민주주의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표현의 자유는 확대되고 검열의 권력은 약해진다"

                           - 본문 13쪽 인용 -

    90년대 학번인 나로서는 사실 '금서'라는 말이 낯설다. '금서'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1970~80년대 무렵 운동권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몰래 돌려읽고 그러다 경찰들의 불심검문에 걸려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하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이렇듯 나에게 있어서  '금서'란 그 시대에서 버림받은 자식같은 느낌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같은 억울한이미지가 가득하며 상당히 부정적인 대상으로 여겨지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일 첫번 째로 소개된 <닥터 지바고>가 금서였을 줄이야.......  학창시절 우리집에 있던 계몽사에서 출판된 <소년소녀 세계명작> 전집 속에 당당히 꽂혀 있던 그 <닥터 지바고>가 금서라니!!!  책, 영화, 심지어 영화 속 삽입음악도 유명해져서 '라라의 테마'는 지금도 초등학생용 피아노 반주곡집의 단골메뉴인데 말이다. 더군다나 <닥터 지바고>의 저자인 파스테르나크는 이 책으로 인해 작가협회에서 제명당했을 뿐 아니라, 그 여파로 2년 뒤에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역시나 우리집 세계명작 전집속에 있었던 <데카메론>, <호밀밭의 파수꾼>, <수상록>, <에밀>, <보바리 부인>이 금서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하나 더........  <채털리 부인의 연인>..... 사실 우리집에 있던 전집속의 제목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글자에 단순한 러브스토리인 줄 알고 펼쳤다가 이상 야릇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내용에 혼자서 얼마나 얼굴을 붉혔던지 모른다. 중학생이던 그 시절...... 다소 순진했던 그 시절 괜히 부모님한테 들키면 혼날 것 같아서 혼자서 몰래 몰래 그 한 권을 다 읽어낸 추억으로 가득한 그 책마저 금서였다니...... 

이쯤되면 이 책의 저자인 주쯔이가 말했듯이 '걸작'의 또 다른 이름이 '금서'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명작'의 또 다른 이름 역시 '금서'이고 말이다.

 

 

 

   이 책은 총 5부에 걸쳐 금서가 된 명작들과 그 작가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부.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말라 - 사회 비판과 대중 선동으로 금서가 된 명작

                                               ( <닥터 지바고​>, <농담>, <암 병동>, <게 가공선>, <우리들>, <직조공들>, <조상의 황혼>, <무엇을 할 것인가>,

                                                 <원숭이의 모험>, <러시아는 누구에게 살기 좋은가>,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나에게 손대지 마라>​ )

                                          

   2부.  감히 권위에 맞서지 말라 - 권력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금서가 된 명작

                                             ( <악마의 시>,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피가로의 결혼>, <데카메론>, <타르튀프>, <위험한 관계>,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여행> )

 

   3부.  다른 생각은 용납할 수 없다 -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통제로 금서가 된 명작

                                             ( <호밀밭의 파수꾼>, <거미 여인의 키스>, <수상록>, <에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살로메>, <율리시스> )

 

   4부.  더러운 욕망으로 사회를 어지럽히지 말라 - 풍기문란이라는 누명을 쓰고 금서가 된 명작

                                                               ( <롤리타>, <악의 꽃>, <보바리 부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 <북회귀선>, <워런 부인의 직업>,

                                                                  <파멜라>, <패니 힐>, <사랑의 기술>, <나나>, <리시스트라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

 

   5부.  어떤 언어로도 출판할 수 없다 - 금서 역사에서의 주요 작가들

                                                   (사드, 푸시킨, 빅토르 위고, 시어도어 드라이저, 윌리엄 포크너, 비트 제너레이션)

 

  금서목록을 보니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시험에 자주 나오던 <수상록>이 보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관해 배울 때 작가와 작품을 연결짓는 문제에서 자주 보고 들었던 몽테뉴의 <수상록> 역시 금서였다니......

  "요즘 사람들은 미셸 몽테뉴를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필가이며 완벽한 고전 작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그는 사상가 중에서는 이단아요, 문학가 중에서는 괴짜였다. 사상이 경직되고 엄숙한 얼굴로 설교할 줄만 알았던 당시 작가들과 달리 몽테뉴는 자기 내면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는 '용감하고 유쾌한 회의주의'를 표방했다. <수상록>은 장장 300년 동안이나 로마교황청의 금서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 본문 211쪽 인용 -

 

 

 

   그리고 몽테뉴에 관련된 내용을 읽다가 너무 와닿은 장면이 있었다. 부럽기 그지없는 몽테뉴의 서재에 관한 묘사였다.

  "몽테뉴의 글은 실제로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20여 년 동안 유유자적하며 보낸 생활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서재는 저택 한구석에 위치한 원형 탑 4층에 자리 잡고 있었고 창문 3개를 통해 사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서재 한쪽에는 천천히 거닐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는 '은둔하는 곳에는 모두 거닐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두 다리가 움직여야 머리가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또 '집에 있을 때 나는 주로 서재에서 지내며 대부분의 집안일을 거기서 돌본다. 입구에 앉으면 정원, 사육장, 뜰 그리고 영지의 거의 모든 것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나는 서재에서 이때는 이 책, 저때는 저 책을 아무 순서 없이 뒤적이며 두루 읽는다. 깊은 생각에 빠져 묵상하기도 하고 가끔은 이리저리 거닐기도 하며 생각나는 것을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모아 글을 쓰기도 한다'라고도 했다.

              - 본문 213쪽 인용 -

  금서에 관한 내용에 심각하게 몰입하며 책을 읽던 중, 몽테뉴의 서재에 관한 설명을 읽는데 순간, 주제는 온데간데 없고 몽테뉴의 그 비밀스럽고 요새같은 서재가 너무나도 탐이 났다. '나도 그런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서재가 있다면.........' 하고 잠시 딴 생각에도 빠져보았다.

 

 

  비록 내가 금서목록에 있는 원작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래도 그 금서들을 조금씩은 맛본 기분이다. 그리고 그 많은 책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쁜 책'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역사적 배경, 사회적 분위기, 그 시대의 유행사조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 같다. 시대별로 국가별로 금서가 되었다가 다시 풀렸다가 다시 또 금서가 되었다가, 그러다 어떤 책은 300여 년이 넘도록 금서목록에 수갑채워져 있고 말이다. 심지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성경은 일부 성도들에게는 금서였다가고 하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그래도 명작은 결국 드러나게 되는 법인가보다. 금서목록에서 잠들어 있던 그 작품들이 이젠 어엿하게 고전이 되고 명작이 되어 세계명작전집 속에서,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가 남긴 말이 인상깊게 남는다.

   "비열한 사람은 이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은

   저열한 말을 들어도 그 인격이 더럽혀지지 않는다. 진흙이 찬란한 햇빛을 더럽힐 수 없고, 땅 위의 더러움이 아름다운 하늘에 오점을 남길 수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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