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한국사 - 우리 지갑 속 인문학 이야기
은동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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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강릉 오죽헌에 간 적이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세계 최초 母子 화폐 인물 탄생지'라는 문구와 함께 신사임당 캐릭터 인형이 세워져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본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

"얘들아! 우리나라 돈 중에서 제일 큰 돈에 누가 그려져 있다고? 바로 우리 신씨

조상님이신 신사임당이야. 자! 신씨들! 여기 서봐. 신씨들만 사진 찍자."

하며 나더러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정말로 신씨들만(?)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사진을 찍던 초등학생 두 딸 아이들의 얼굴위로 묘한 자부심이 스쳐 지나갔고,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5만원권 지폐를 볼 때마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배시시 웃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다른 금액의 지폐들보다도 5만원권 지폐가 예사롭게 봐지지 않았고 5만원권 지폐의 구석구석을 종종 살펴보곤 했는데, 지폐에 그려진 그림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실 5만원권 뿐만 아니라 더 자주 사용하는 1만원권, 1천원권이나 동전에 그려진 그림들에 대해 아이들이 질문을 할 때도 많았는데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서 기회가 된다면 화폐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다. 오랜 시간동안 가지고만 있었던 이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책이 있으니 바로 <화폐 한국사>이다.

     이 책은 '동전 속 한국사'와 '지폐 속 한국사'의 두 주제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화폐마다 별명을 붙여두고 있다. '나라꽃 무궁화(일원)', '무적 신화의 거북선(오원)', '깨달음의 탑, 다보탑(십원)',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벼(오십원)',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백원)', '신선의 벗, 학(오백원)', '학문을 꽃피운 대학자, 퇴계 이황(천원)', '조선 제일의 천재, 율곡 이이(오천원)',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섬긴 왕, 세종(만원)', '예술가이자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오만원)'

     수요가 줄고, 동전훼손범죄 이용의 우려 등으로 더 이상 발행하지 않거나 재료를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된 1원과 5원 동전, 10배의 환율 차이를 노려 일본에서 불법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500원 동전, 평균 수명이 4년 5개월인 1천원권, 영국 화폐 제조사에서 원판을 도안하다보니 '서양 율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5천원권,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등재된 친일 화가가 그린 초상을 도안으로 삼아 논란이 되기도 했던 1만원권 등 우리가 몰랐던 화폐의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담겨 있어서 책이 제법 두꺼운 반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 명절을 맞이해서 아이들에게 줄 세뱃돈을 준비하면서 5만원권, 1만원권 지폐를 여러 장 세아리는데 더 이상 늘 보던 그냥 돈이 아니었다. 액면가의 가치만 가진 돈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또 하나의 역사책으로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설날 아침, 세뱃돈을 주는 내 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세뱃돈을 통해 지갑 속에 꼭꼭 숨어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나는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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