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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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말 이어령 교수님이 별세하셨다는 뉴스를 보는데 마음 한 구석이 털썩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간암 판정 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치료약 조차 일절 복용하지 않으신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따뜻한 봄이 오기도 전에 교수님은 그렇게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셨다. 기회가 된다면 교수님 강의도 들어보고 싶고, 육성도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교수님은 그렇게 작별을 고하셨다.

    


오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한 세상을 살아왔고 한 시대를 지내온 사람으로서

마지막, 여러분과 헤어지는 인사말을 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떠나죠.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중간 생략)

그 이야기들이 여러분과 헤어지는 인사말이 되고,

내가 없는 이 땅에 태어날 미래의 생명들에게 전하는 그런 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미래를 향한 작은, 나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죠.

- p. 5~6 中 -


    

    일제 강점기 시기부터 지금까지 근현대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시대를 나타낼 수 있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백두산을 뽑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노래에 나오는 그 단어들이 키워드가 되어 각각의 챕터에서 저자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독자들과 편하게 마주 앉아 대화하듯 구어체로 구성된 본문의 내용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스르륵 빨려 들어가게 할 정도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쉴 틈 없이 이어져 나간다.

     노래 가사 속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두고 하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개화기 때 만난, 우리와 너무 다르게 생긴 외국 사람들 및 외국 문물들이 원숭이이다.

 - 개화기 때 들어온 과일들로서 개화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과일이 사과와 바나나이다. 

 - 기차 역시 개화기 및 모든 문명을 상징하며 이런 문명의 마지막 단계가 비행기이다. 

 -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를 보며 남의 물건을 쫓아가고 그것을 배우던 역사가 한 바퀴 돌아 백두산에서 마무리된다.


    저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쉼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치 제목인 '작별'을 위해 알고 있는 하나라도 더 독자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과 안타까움이 느껴져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오기도 했다. 



     

참 먼 길을 돌아왔네요.

내가 여러분들과 헤어지는 인사말 '잘 있어'라는 말, '잘 가'라고 하는 그 '잘'이라는 말.

영어로 웰 다잉, 웰 에이징 등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웰'이라는 말,

그게 바로 잘 있어, 잘 가 할 때의 '잘'입니다.

그게 바로 어질 인이죠.

이게 있으면 잘 있고 잘 가게 되는 겁니다.

떠나도 그와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고,

잘 있으면 떠나간 사람을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잘 있어, 잘가입니다.


   '잘 있으면 떠나갈 사람을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저자의 이 말 한 마디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떠나보내드리기 아쉬운 교수님이지만 그래도 잘 보내드리고 잘 있어야함을 숙제로 명 받았기에 이제 그 분을 고이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


   " 이어령 교수님,

     잘 있을게요. 

     교수님도......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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