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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쓸모 - 삶에 허기진 당신을 위한 위로의 밥상
서지현 지음 / 허들링북스 / 2021년 9월
평점 :
며칠 전 추석날이었다. 늘 그렇듯 근처에 있는 시댁으로 아침 일찍 온 식구가 출동을 했다. 전날에 이미 음식은 다 만들어 두고 온 터라 아침 식사를 다같이 하려고 간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서 맛있게 밥을 먹는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갑자기 울컥 하더니 목이 메어오는 것이다. 해마다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한 명절 음식을 먹어왔는데 돌아보니 그간 내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왔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올해 연세 72세이신 어머니의 밥상을 맢으로 과연 몇 번이나 더 받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 '어머니가 안 계시면 내가 어디서 이런 집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터지려는 것이다. 살아가는 순간순간 삶 속에서 허기질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집밥 덕분에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음을 맘속으로 조용히 고백하고는 식사 후 어머니께 감사인사를 전해드렸다.
"어머니, 오늘 밥 너무 맛있었어요. 정말 잘 먹었어요."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그랬니? 차린 것도 없는데 맛있게 먹었다면 나야 고맙지."
하시며 쑥스러워 함과 동시에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이게 바로 집밥의 힘이겠지? 그리고 저자는 이걸 일찍 깨달았기에 교사생활과 주부역할을 과감히 맞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을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어렵게 꿈을 이루었을 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과감히 교단을 내려와 '좋은 식사는 곧 그 사람이 살아갈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모토로 삼고,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쩌면 난 밥 짓는 일을 짐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방에 물기 마를 날이 없다며 투덜댄 건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던가. 한 끼 한 끼 밥을 지어 내고 내 작은 사림을 매만지는 일에 이토록 속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정작 나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깨닫고는 별안간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나, 혹시 집밥에 중독된 걸까? - p. 178 中 - |
불 앞에 설 체력을 위해 매일 줄넘기를 2000번씩 하는 그녀. 반려 식물 대신 콩나물을 기르며 잔잔한 행복을 만끽하는 그녀. 얼마나 집밥에 진심인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집밥에 중독된 게 맞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느껴진다. 진정한 주부프로. 그러기에 그녀는 마지막 장까지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 여러분,
밥은 먹고 다니시나요?"
종종 밥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이 물음은 아무나 던질 수 없다. 가까운 사람, 서로를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사람 사이에서만 물을 수 있다. 사회적 위신을 염려해서도 아니고, 손댄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몸 성하고 아픈 데 없기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다.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묻는 것은, '네 몸과 마음을 돌볼 최소한의 여유는 갖고 살고 있니?'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 p. 221~222 中 - |
먹는 것에 그렇게 욕심이 없는 나는 삼시 세끼를 그날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여겨왔다. 그랬기에 가족들을 위한 식사를 챙기면서도 잔뜩 경직된 마음으로 온갖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글을 읽고 보니 내가 음식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욕심이 많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잘 해야겠다는 부담으로 가득했던 것이다.저자처럼 그냥 냄비에 갓 지어낸 밥과 김치 하나 만으로도 따끈한 집밥을 차려낼 수 있는데, 나는 그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5첩 반상, 7첩 반상은 되어야 제대로 된 집밥이라며 혼자서 고집을 부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주방에서의 모든 일에 힘이 들어가다보니 주방은 더이상 내게 편한 공간이 될 수 없음은 당연지사이고.
어제 모처럼 냄비밥을 지어보았다. 압력밥솥에 밥을 하면 30분도 채 안되어서 상황종료인 반면, 냄비에 밥을 하려니 쌀을 불리는데 30분, 센 불에 끓이는데 10여 분, 불 줄여서 끓이는데 또 15분, 뜸 들이는데 10분. 무려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비밥의 매력을 깨달았으니 적당히 눌어붙은 누룽지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온 가족이 냄비바닥을 긁어가며 쟁탈전을 벌일정도 였으니 어제의 베스트 푸드는 냄비밥이지 말입니다!
단출한 메뉴이더라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집밥'에는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가득한 것 같다. 그게 바로 학교에서, 직장에서 방전된 채 돌아와도 내일 다시 힘내서 학교로, 직장으로 갈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내 가족을 위해 정성껏 차린 이 밥상이 언젠가 그들이 '인생의 허기'를 만났을 때 헤쳐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냄비밥을 지으러 간다. 쌀독을 여는 나의 뒤로 큰아이의 통통 튀는 주문사항이 들려온다.
" 엄마, 오늘은 누룽지 더 많이 나오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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