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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 라이프 - 인간.생명 그리고 마음 ㅣ 과학오디세이
안중호 지음 / Mid(엠아이디) / 2021년 1월
평점 :
얼마 전 친구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조문을 다녀왔다. 친구가 맏이이다 보니 아버지 연세도 많지 않으셨고, 평소 지병도 없으셨는데 갑자기 심장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쓰러지시더니 결국 몇 시간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평소 건강하시던 분을 갑작스레 보내드려야 했던 친구의 가족들은 얼마나 황망했을까. 아버지 얘기를 하며 눈물만 줄줄 흘리던 친구를 보니 16년 전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생각도 나면서, 지금 이 순간 친구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를 알 것 같아 같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해주고 돌아왔다. 여지껏 조문을 수차례 다녀왔지만, 친한 친구의 부친상을 겪어보니 한동안 잊고 있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와 나의 가족들은 지금 인생의 어디쯤을 살고 있을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와 함께 사실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집 막내인 2살된 강아지는 과연 우리와 얼마나 함께 있어줄 수 있는지 등 생각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던 무렵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죽음', '남은 생애' 등에 관해 심오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자는 반대로 '우리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길 권면하며 그 고민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저자는 과학자답게 아주 시크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끊임없이 순환하는 우주에서 물질이 잠시 거쳐가는 상태가 현재의 내 육신입니다.
내 것이라고 부를 어떤 원자도 없지요."
- p. 549 中 -
원자, 분자, 세포들이 잠시 모인 상태가 내 육신이며 이 모든 생물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해체된다고 얘기하는 저자의 말에 순간 공허감이 밀려왔다. 어느 정도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거침없이 "나야 나!"라고 말할 건데 저자는 물리적인 '나'는 허상이라고 하고, '마음'은 '수많은 뉴런들이 전기화학적 원리에 의해 순간적으로 신호를 연결했다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창발 형상'이란다. 즉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허상인 '나'와 '실체가 아닌 '마음'. 여기까지 읽는데 순간 허무함이 밀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예측이라도 한 듯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현재의 상태만이 '나'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를 아쉬워 하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미망(迷妄)입니다."
- p. 555 中 -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 고통스럽건 행복하건 주어진 '나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 서로 사랑하라.
- 서로 용서하라.
두꺼운 과학책 한 권을 낑낑대며 읽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철학자의 마음 수련 관련 책을 한 권 읽은 것처럼 어느새 내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유인원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기원에 관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세포분열, DNA, 뇌, 지능, 종교 등 다양한 내용들을 읽으며 과학적 상식을 쌓아가나 했는데 과학자가 아니라 진리를 찾은 한 철학자의 삶의 지혜 한 수를 배운 것 같다. 우리의 근원을 잊지 않고, 현재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만족하며 열심히 일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저자의 이 한 마디가 코로나 19로 어둡기만 한 이 시대에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