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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 비야·안톤의 실험적 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톤 반 주트펀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목만 보는데도 심쿵해졌다. '함께'라는 이 두 글자가 내게 주는 가슴 찡함은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뿐만 아니라 표지를 가득 채운 나무들 사이로 작게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은 그동안 씩씩한 한비야 님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으로 뭔가 아릿했던 마음마저 날려주었다.
'바람의 딸'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나는 왠지 한비야 님을 볼 때마다 그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힘겨운 일을 하는데 늘 혼자인 그녀를 볼 때마다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그녀가 드디어 결혼을 했단다. 아프가니스탄 구호 현장에서 만난 네덜란드 사람 안톤과 결혼해서 어느덧 결혼 3년 차에 접어들었다니 이 아니 반가울 수가 없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날 정도로 전 세계를 누비며 20대부터 바쁘게 국제 홍보, 세계일주, 구호활동, 학위 공부 등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뛰어들던 그녀. 60대의 안톤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는데, 역시 그녀는 남다르다. '따로 또 같이' 방식을 원하는 이 두 부부는 은퇴한 안톤, 아직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그녀의 삶을 존중하여 '336타임'의 결혼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단다. 1년 중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3개월은 한국에서 같이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따로 지내는 것이다.
이 관계의 여백과 과유불급의 마음가짐은 우리 결혼 생활의 가장 핵심 요소다. 가까이 하되 너무 가깝지는 않게, 충분히 마음 써주되 과하지는 않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지켜주기. 이제 결혼 3년 차,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다. - p. 19 - |
역시 그녀답다. 일도 결혼도 화끈하고 멋지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알짜배기의 삶을 살 줄 아는 그녀는 여전히 내 삶의 롤모델이다.
휘게의 나라 네덜란드 사람답게 안톤은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안다. 그에 비해 늘 바쁜 삶의 연속선상에 서있던 그녀는 결혼 후에도 늘 바삐 살아가기에 남편인 안톤은 그런 부분에서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어디 그 부부만 그러겠는가. 나 역시 결혼하고 3년까지는 주구장창 싸웠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서로가 맞춰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보통 그 시간을 잘 이겨내지 못해 각자의 길을 가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 부부 참 지혜롭다.
우리에게는 앞에서 말한 3단계보다 훨씬 확실하고 효과적인, 최고 단계의 갈등 해소법이 있다. 바로 교차 통성기도다. 안톤과 나는 아침마다 15분 정도 둘이 차례로 소리 내어 기도하면서 하루를 여는데 서로가 서로의 기도내용을 들을 수 있는 그때가 가장 효과적인 갈등 해소 시간이다. 기도 중에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걸려 남아 있는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지 등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느님, 오늘도 안톤은 젖은 수건을 침대에 놓았습니다. 그도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지만 오랜 습관이니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잔소리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을 제게 허락하소서." 하느님을 매개로 한 확실한 소통법이자 잔소리 방지법이다. - p. 85 - |
기도를 통해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알콩달콩 결혼생활은 3년 차 부부답지 않은 노련함 마저 엿보인다..
이 책의 인세 50%는 부부여행의 퀄리티를 올리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50%는 여행 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단체를 위해 쓰자고 기분좋게 결정내리는 쿨한 부부. 이 두 사람이 동화 속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