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세계사 -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이선필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새벽의 일이다. 잠결에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려고 안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소리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우리 강아지 보리였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20분. 순간 피식 웃음이 터졌다. 점점 날씨가 더워져서 오전보다 새벽에 산책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요며칠 새벽 일찍 산책을 시켜주었더니 그새 습관이 되었는지 그 시각에 나를 기다리며 안방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빨리 안 나온다고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세수도 안하고 보리와 산책을 하며 새벽을 맞이했다.  새벽에는 주로 요가나 독서, 기도 등 주로 정적인 일을 하던 내가 우리 강아지로 인해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어가고 있는 걸 보면 이 녀석이 우리 식구로 제대로 자리잡은 모양이다.



         반려견과의 생활이 시작된지 다음 달이면 1년이 된다. 개를 워낙 무서워해서 만지지도 못하고 피해 다니기만 하던 내가 우리 보리를 만나 반려동물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더 나아가 유기동물 및 반려동물의 복지에 관해서도 점점 관심이 생겨나고 있었는데 세계사 속에서 개를 발견해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아주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유럽정치 전공의 교수님이 직접 개원한 애견 학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동물권과 반려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 보면 저자가 이 책을 펴낸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표명되어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그들이 세계 각지에서 우리 인간들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들은 어떤 지역에서는 때때로 썩 괜찮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신처럼 숭배받는 대상이기도 했다. 때로는 어둠 속에서 학대당하고 희생당하면서 살아왔다. 이렇게 그들이 인간과 부대끼며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들의 삶을 알아야 비로소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프롤로그 中 -

            궁금하고 설레었다.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의 조상들이 역사속에서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나의 궁금증은 서서히 증폭되고 있었다.



            서양편, 동양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양의 내용이 60% , 동양의 내용이 40% 정도로 편성되어 있다.

            서양편의 내용에는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페르시아,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중세유럽, 근대 유럽, 북아메리카, 중남미 지역이 소개되고 있고, 동양편에서는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소개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개들이 주로 사후 세계와 연결지어주는 동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아누비스'이다. 이집트의 신인 아누비스는 검은색 개의 머리와 인간의 몸을 가진 지하세계의 신으로서 죽은 자를 심판대로 인도하는 일종의 저승사자란다.  신화에서 뿐만 그리스 철학의 곳곳에서도 개는 등장하고 있는데 '세파를 벗어나 개처럼 살자'라는 모토를 가진 그리스 견유학파(犬儒學派)의 이름도 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도 얘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밝은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반려인으로서 읽기에 가슴 아프기도 하고 잔혹한 내용들도 소개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키친도그'였다.

          벽에 달려 있는 동그란 쳇바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안에는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열심히 제자리 뛰기를 하며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쳇바퀴의 기다란 줄이 한쪽 구석에 마련된 벽난로 앞의 동그란 바퀴와 연결되어 있다. 벽난로 앞의 동그란 바퀴에는 쇠꼬챙이가 길게 연결되어 있고, 꼬챙이에는 메인 요리로 먹을 고기 덩어리가 끼워져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강아지는 힘이 들었는지 달리기를 멈췄고 삐걱삐걱 소리 역시 멈췄다. 강아지가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여주인은 벽난로에서 조그만 숯덩이를 하나 꺼내 쳇바퀴에 넣었다. 열기에 깜짝 놀란 강아지는 다시 일어나 쳇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 본문 95~96쪽 - 

            이 슬픈 장면은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가정집 부엌에서 저녁마다 반복되었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고 한다. 부엌에서 일하는 개라고 해서 이름도 '키친 도그'였던 것이다. 역사속의 한 장면이긴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반대로 반려인으로서 너무 만족스런 나라도 소개되고 있다. 바로 인도였다. 인도에서는 동물이 주인 없이 거리를 배회하더라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범죄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라도 동물을 유기하면 최대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단다. 두 손 들고 환영할 내용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0달러 정도로 세계 125위의 경제적 후진국인 인도이지만 동물보호하는 면에서는 그야말로 선직국에 버금가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이 된다.

            우리나라 편에서는 삽살개에 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 신라 시대부터 '귀신 잡는 개'라고 알려진 삽살개가 호신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없애다'라는 의미의 '삽'과 귀신과 액운을 의미하는 '살'이 합쳐져 삽살개가 된 것이니, 털복숭이의 이 개가 영적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넌 이 개는 신라 시대에 귀족들의 개였다.

                                      - 본문 197~198쪽 中 -

            일본의 조선문화말살정책으로 멸종할 뻔 했던 삽살개의 이름에 이런 뜻이 담겨있었을 줄이야.



            이렇듯 우리가 몰랐던 개에 관한 역사를 알게 되어 유익하기도 하지만 글의 각 꼭지마다 감동의 글귀들이 한 문장씩 자리잡고 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 개의 삶은 짧다. 그것만이 개의 유일한 단점이다.

        -  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  개는 나를 물지 않는다. 나를 무는 것은 인간이다.

       -  개는 인간보다 낫다. 그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는다.

       -   사람을 오래 관찰할수록 내가 기르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  개는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매일 우리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보낸다.



            책을 덮고나서 우리 강아지 보리를 보았다. 장난감 가지고 신나게 놀던 녀석이 어느새 내 발 밑에 와서 곤히 자고 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조용히 따라다니는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이뻐 보이나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우리 보리를 더 이뻐하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