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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제목이 예뻐서(?) 단박에 빌려온 책이 있었으니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당시 문고판 도서였기에 표지 그림도 없이 그냥 책 제목만 씌어 있었기에 제목만 보고 내가 상상한 책의 이미지는 호밀을 키우는 시골에서 일어나는 소박한 일상들의 이야기 정도였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가 나의 상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전개되어가는 내용에 절반 정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해던 책. 그랬던 책을 2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재회하게 되었다. 마치 초등학교 동창을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오랜만에 다시 만난 반가움, 그 시절 읽지 못하고 덮어버린 미안함, 영미 현대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책을 몰라본 무지함 등 책을 읽기도 전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밀려왔다. 그래서인지 평소 소설책은 가볍게 스르륵 읽는 습관을 가진 내가 이 책은 평소 때와 달리 한 장 한 장 꼼꼼이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 읽어내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이 책은 1951년 출간되어 전 세계에 7천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미 현대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정도로 명작인 이 책은 특히나 유명 인물들이 소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그 중 존 레논의 암살범이었던 채프먼은 암살 현장에서 이 책을 읽고 있었고 경찰에게 체포될 때까지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감옥에서 수감중일 때 책의 저자인 J.D.샐린저에게 감사의 편지까지 썼다고 한다. 그랬던 책이기에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책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고등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고 학교를 나와 2박 3일간 방황을 하는 이야기이다. 동생을 누구보다 예뻐하는 홀든에게는 착하고 똑똑한 남동생 앨리와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동생 피비가 있다. 그런데 홀든이 13살 때 백혈병으로 남동생을 잃게 된다. 그 충격으로 홀든은 차고의 유리를 다 부수며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분노와 절규를 그렇게 표현한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 아버지, 다소 엄격하고 무뚝뚝한 어머니로 인해 홀든은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으로 얻게 된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혼자서 추스려야 했고 스스로 치유해야 했다. 나도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을 둔 엄마다보니 그 장면에서 홀든의 부모의 모습에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만큼 힘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그들은 홀든과 피비를 좀 더 챙겨봤어야 했다. 특히 예민한 사춘기 시기에 접어드는 13살이었고, 누구보다 사랑의 마음이 크고 순수한 감성을 가졌던 홀든이었기에 그가 감당해야 할 상실감으로 인한 상처와 제대로 치유받지 못해 더욱 덧난 마음의 상처는 홀든의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이어지게 된다.
1년에 4번의 생일축하금을 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자금이 두둑했던 홀든은 또래보다 큰 키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덕분(?)에 호텔, 클럽 등을 다니며 어른들의 부도덕함과 잘못된 모습들을 직접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보며 그들과는 분별된 삶을 살고 싶어 다른 세상으로의 탈출으 꿈꾸는 홀든.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간 홀든은 여동생 피비와의 대화중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봐."
- 본문 251쪽 中 -
그러자 홀든은 한참을 고민하다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있는 내용의 답을 한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에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 본문 256쪽 中 - |
이 대목에서 역시 내가 생각했던 홀든답다 싶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의 부적응아이고 거친 말을 하며 담배를 즐겨 피는 문제아로 보이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누구보다 고운 심성과 세상 속의 악함과 더러움과 끊임없이 분별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런 그였기에 순수함으로 가득한 사랑스런 동생 피비를 비롯해서 이 세상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오염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사람이 되고싶었던 것이다. 그렇듯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기에 어른들의 속물근성을 비롯해서 허위와 위선을 견디지 못해 제도권 교육조차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1인칭 시점의 홀든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어나갔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그의 모습에 딸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가고 있었다. 유난히도 사춘기를 힘들게 앓았던 큰아이는 어릴 때 정말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또래에 비해 순수하고 감성이 풍부해서 잘 웃고, 가족들을 따뜻이 품어주던 아이였는데 중학생이 되고서부터는 가족들을 몹시도 힘들게 했다. 180도로 달라져 버린 딸아이의 모습에 온 가족은 늘 큰아이의 눈치를 보기 바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딸아이의 그런 말과 행동들이 왜 나오게 된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려고 한다. 순수했던 아이가 세상을 조금씩 바라보게 되었고 어른들의 세계도 들여다보게 되는 가운데서 겪게 된 실망감, 소외감들이 결합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방법대로 표현했던 딸아이를 나무라고 야단쳤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고 있던 거였는데 그걸 두고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그냥 묵묵히 기다려줄 걸.........'하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홀든의 성장소설을 읽으며 내가 성장한 기분이다. '사춘기 자녀 다루는 법'을 홀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배운 것 같다고나 할까. 홀든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 그냥 안아주세요!"
" 믿고 기다려주세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