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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한 머리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 - 메모는 제2의 두뇌이다
김연진 지음 / 더로드 / 2020년 2월
평점 :
한때 '총기있다', '총명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곤 했던 나였다. 나름 기억력도 좋고 눈썰미도 좋아 한 번 본 사람 얼굴도 잘 기억하고 이름, 전화번호 등을 기억하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에 잘 남는 편이라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기억력도 떨어지고 잘 잊어버려서 생활에서 불편한 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자주 생겨나는 문제 중 하나가 출근할 때 한 번만에 못 나간다는 것! 현관문을 닫고 나가면 꼭 집에 놔두고 나온게 생각이 난다. 대체로 휴대폰이 그 빈도수 1위를 차지하며 2위는 자동차 키, 3위는 챙겨야 할 서류들 그 밖에 간식이나 소소한 준비물 등이다. 대체적으로 두어 번은 꼭 현관문을 다시 열고 들어왔다 나가야만 출근이 가능하다.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내가 몇 층에 차를 주차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본문 속에서 저자도 그런 경험을 얘기하지만 나 역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몇 번이고 했다. 그 바쁜 아침시간에 차를 찾아 헤매다보면 짜증지수가 올람감은 기본이요, 직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다. 그것도 월요일 아침에 그런 일이 가장 많다는 것! (몇 번의 낭패를 겪은 나는 결국 작은 메모보드판을 사서 현관문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퇴근길에 꼭 주차 층수를 보드마카로 적어둔다. 'B1', 'B2', '1층' 이런 식으로 말이다.)
점점 감퇴되어가는 나의 기억력을 보존하기 위해 이젠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 싶어 메모를 조금씩 하려고 노력하던 즈음 '둔한 머리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평소 내가 존경하는 정약용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 '둔필승총(둔한 붓이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를 살짝 패러디한 제목이라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직업은 교도소 교도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새벽독서를 한 후 1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서 직장으로 출근을 한 후 바쁜 업무처리를 하고 귀가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일반 직장인들과의 차이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직장이 교도소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저자는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메모의 필요성을 좀 더 느꼈던 것 같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은 몸이 아플 때 딱히 특별한 처방이 없다. 심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먹는 약으로 치료한다.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약을 주는 일은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다. 수용자에게 약을 줄 때 교도관은 약봉지를 직접 뜯어서 준다. 목으로 삼키는 것까지 확인한다. 수용자가 약을 받아놓고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몰라서이다. 약을 먹으면 '교도관 근무일지'에 기록을 한다. 날짜, 시간, 누가 먹었는지를 세세히 기록한다. 이 기록은 약을 먹었다는 증거로도 활용이 되지만, 차후 더 나은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교도관인 나는 평소 가지고 있는 메모습관의 덕을 많이 본다. 펜을 들고 적는 일이 교도관의 업무에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적는 것을 귀찮아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럼 꼭 일이 생긴다. - 본문 32쪽 - |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많은 역할을 감당하는 팔방미인이다. 멘토처럼 교도소 수용자들을 품어주는 정 많은 교도관, 찬양사역을 감당하는 신실한 신앙인, '감사 메모장'으로 아내를 언제나 배려하는 따뜻한 남편, 딸아이의 육아일기를 쓰며 육아에 전심으로 동참하는 사랑 넘치는 아빠, 처가 식구들에게 책읽기 운동을 퍼뜨린 지적인 사위. 이 모든 게 저자를 호칭할 수 있는 다양한 이름표들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못했다고 한다. 저자의 고백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원래 메모를 잘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집중력도 약하고, 의지도 약했다. 당연히 공부를 잘할 리가 없었다. 또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주특기였다. 눈은 응시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그 상황을 외면하고 있었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30세에 교도관이 되었다. 교도관이 되니 수용자를 상대해야 했다. ( 중간 생략 ) 특별한 이슈가 있거나 수용자가 특수한 행동을 보이면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다 적었다. 날짜를 적고, 시간을 적고,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했다. 어쩔 수 없었다. 교도소 안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 본문 15쪽 - |
그러면서 점점 기록에 재미를 붙이게 된 저자는 직장에서 뿐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도 그 반경을 넓혀가게 되어 이제는 메모의 달인이 되어 책까지 펴게 되었다. 그야말로 메모의 힘이다.
2020년도 들어서서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쓰려고 노력중이다. 직장에서도 이제 좀 더 책임을 져야하는 직책을 맡게 되어서 업무에서도 좀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사'에서 나온 B5 크기의 업무수첩용 다이어리를 구입해서 뭐든 다 적는다. 회의내용, 전달사항은 기본이고 제출서류 내용, 시간약속 등등 양이 너무 많으면 워드로 타이핑해서 2쪽 모아찍기로 작게 출력한 후 업무수첩에 붙이고 형광펜으로 칠하고 그 옆에 또 기록하며 잊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책을 읽던 중 저자의 꿀팁 하나를 발견했다.
메모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자신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줘보라. 나는 메모장에 기록을 한 번 할 때마다 별 스티커를 다이어리에 붙였다. 그리고 10개가 모이면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 사서 마셨다. 소소한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보상해준다면 작은 것들이 모여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데 수월할 것이다. - 본문 129쪽 - |
좋은 아이디어이다 싶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 받을 때마다 사탕 하나를 먹을 수 있었던 국민학교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사탕 하나를 받을 때 얼마나 뿌듯했었는지 모른다. 그 때처럼 내가 업무수첩이든 개인 다이어리이든 어디에든 메모를 하고 기록을 할 때마다 스티커를 하나씩 붙일까 싶다. 그래서 나도 10개가 모아지면 우리집 앞 카페에 가서 맛있는 카푸치노 한 잔 마셔야겠다. 점점 이렇게 손을 사용하며 메모하는 습관이 확장되어 나중에는 '확언'을 메모하는 습관까지 가져보고 싶다. 그래서 매일 아침 '확언'으로 시작하는 미라클 모닝을 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