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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 정작 우리만 몰랐던 한국인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
한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휘게'만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휘게' 열풍이 불어서였을까? 그래서 이젠 '휘게 = 행복'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라 글자만 봐도 행복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였을까? 아무튼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 중 하나로 늘 손꼽히는 덴마크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언젠가 올해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핀란드에 이어 덴마크가 2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를 듣고 꼭 한 번 덴마크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터라 난 이 책의 제목만 보고 '콩까지'가 씌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다. 덴마크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순도 100%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허, 거참! 보통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나 표지, 목차를 보고 첫이미지를 잡고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거의 80~90%는 내가 추측한 예상대로 내용이 진행되곤 했는데, 이번 경우는 내가 추측한 게 전혀 맞지 않아서 읽는내내 적잖이 놀랐다. (감이 떨어졌나?)
우선 저자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의무나 숙제로 알고 있으며 그 숙제를 해내려고 아둥바둥거리다보니 정작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은 놓친 채 행복과는 평행선을 그리며 살고 있음을 콕 집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불행한 이유를 역사적인 장면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안정적이고 따뜻한 가정에서 예쁨 받고 곱게 자란 것이 아니라, 부모 잃고 고아가 되어 여기 저기를 떠돌며 눈치밥을 먹고 어쨌든 성공하기 위해 아둥바둥 살 수 밖에 없는 소년 가장이 되어 힘겹게 사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우리의 현실에 있다. 한국은 불행한 현대사를 가진 나라다. 일제강점기, 동족 간의 전쟁과 분단, 냉전과 군사독재, IMF.....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이러한 세월을 지내오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겪어왔던 직접적인 피해와 상처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과도한 경쟁과 성공 지향 주의 등의 습관과 문화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 - 본문 6쪽 인용 - |
그리고 다소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트라우마가 적어도 3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유난히 질곡의 삶을 지내온 한국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트라우마 투성이다. 일제 강점기 36년, 6.25로인한 남북분단, 30년 가까이 이어진 군사독재, 민중의 피로 이루어 낸 민주주의, 우리 부모님들 세대의 '피, 땀, 눈물'로 일구어 낸 경제 성장, 이런 급격한 성장의 부작용으로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는 등 연거푸 터진 대형참사들. 이런 일들을 우리가 직접 겪기도 한 세대도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겪은 이런 많은 트라우마들이 우리들의 마음에도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적어도 3대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임신한 지 5개월째가 되면 태아인 어머니의 난소에 훗날 내가 될 난자의 전구세포(precursor cell)가 발생한다. 역시 내가 될 아버지 정자의 전구세포 역시 아버지가 할머니의 자궁 안에 태아로 이쓸 때부터 존재한다. 이는 트라우마의 기억이 최소 3대에 걸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는 융의 집단 무의식은 이러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결과일 수 있다. - 본문 41쪽 인용 - |
이런 트라우마의 쓴뿌리가 이미 한국인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니 희망과 기쁨에 가득 차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것이 아니냐고 저자는 되묻고 있다.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답게 참 예리하고 날카로운 분석에 몇 번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소심한 변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소지가 있다는 생각에 저자의 분석에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도 저자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던지고 있다. 아니 프롤로그에서 이미 결론을 다 지어버렸다.
결국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행복은 나의 몫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위한 과정 중에 경험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은, 불행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 본문 7쪽 인용 - |
본문 중에서 저자는 '파랑새'이야기에 관해 언급한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힘겹게 찾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에 파랑새가 있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그 이야기가 전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저자의 말처럼 내 삶 자체가 바로 행복이며 삶속에서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사는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 비롯된다는 것! 그게 파랑새이자 그게 행복이라는 것! 그게 바로 '휘게'라는 것! 모든 게 확실히 정리가 되어졌다. 이제 나도 파랑새를 찾아 떠날 게 아니라, 우리집 곳곳에 숨어있는 파랑새들을 찾아봐야겠다. 앗! 벌써 찾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내 책상 노트북 모니터에서 한 마리가 푸드덕 거린다. 예쁜 파랑새 한 마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