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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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난 건 작년 5월이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타이틀답게 늘 5월이면 여기 저기 꽃구경을 다니며 즐겁게만 보내곤 했는데, 작년 5월은 예년과 달리 그러하질 못했다. 날씨도 봄날 같지 않게 아침 저녁으로 스산하기만 했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이 연거푸 쏟아지는 통에 정말 계절의 제맛을 보지도 못하며 그렇게 5월을 보내고 있었다. 유난히 힘든 봄을 보내는 탓인지 40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어린애 마냥 혼자서 훌쩍훌쩍 우는 일들도 잦아졌고 말이다.

    그렇게 힘든 봄을 보내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제목만 봤을 뿐인데도 나는 나와 동갑내기인 저자에게 이미 위로와 위안을 다 받은 것만 같았다. 누가 볼새라 혼자 숨죽여 울고, 티슈로 눈과 코를 틀어막고 울던 나였는데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라는 제목을 보니 마치 내 눈물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만 같아서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중앙일보에서 사회, 문화, 정치 담당 기자생활을 한 작가로서 2016년에 JTBC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도 JTBC <정치부회의>에 출연중이라고 한다.(2019년 현재까지도 진행형인지는 모르겠다)  바쁜 직업 중의 하나인 기자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저자의 모습에 감탄스러웠다. 나와 같은 나이에 벌써 벌써 이 책이 세 번째 산문집이라고 하니 존경심과 함께 샘(?)이 나기도 할 정도이다.

     저자가 서른 즈음부터 마흔 즈음에 걸쳐 썼던 에세이를 묶은 책 답게 이 나이 무렵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과 동질감을 느낄 만한 주제들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신변잡기적인 주제들, 애잔하게 바라봐지는 가족의 일상사들, 3040세대로서 제법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지는 정치계의 모습들, 그리고 전국민이 통탄의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지켜봐야했던 세월호 사건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저자는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듯 팩트와 감정을 적절하게 잘 버무려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와닿았던 내용이 있었다.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계속 나에게 여운을 남기며 말이다.

 < 생일 >

   삼십대 중반을 넘어셔면서부터 생일이 닥칠 때마다 나는 문득 서러워진다. 청춘에서 점점 멀어지는 내 나이 때문이 아니라, 내 부모의 나이가 떠올라서다. 막내아들이 중년에 가까워지는 동안 아버지와 엄마는 이 나라의 법이 정해놓은 노인의 기준을 이미 충족했다. 내가 힘껏 나이를 먹는 동안 내 부모 역시 최선을 다해 늙음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생일이 마냥 즐거운 날이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에 이르렀다. 생일이 돌아왔다는 것은 내가 한 해만큼의 생명을 소진했다는 뜻이니까. 늙은 부모의 삶 또한 그만큼 닳아버렸을 테니까. 중년이 임박한 내게 생일은 다급한 생명의 신호다. 소중한 이들을 사랑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문이다.

                                                                             -  본문 137쪽 인용 -

     나 역시 사십대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입장이다 보니 저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건조한 말투로 차분히 써내려간 글 같지만, 행간 여기저기에서 가족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외치는 저자의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만 저자의 성별을 확인해보곤했다. '정말 남자가 쓴 글이 맞아?'라는 의구심을 가지며 말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와 '한때 소중했던 것들'을 읽으면서도 몇 번이고 그랬는데, 이 책 역시 그러했다. 그만큼 저자는 각 주제마다 아주 섬세하게 터치하고 있으며  디테일한 감정까지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동성의 친구와 대화를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가 삶의 변곡점마다 흘린 눈물들이 글의 씨앗이 되어 한 권으로 완성된 이 책을 읽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정화된 기분이다. 시원하게 한 판 울고 난 것처럼 말이다. 맘이 답답할 때, 외로울 때, 속상할 때, 울고싶을 때 나는 아마 이 책을 또 펼쳐서 읽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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