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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 - 성 심리학으로 쓴 21세기 사랑의 기술
에스더 페렐 지음, 정지현 옮김 / 네모난정원 / 2011년 10월
절판
도발적인 이 책 제목에 대해 주위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대뜸 ‘몰라서 묻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라고 꼬치꼬치 따지고 들어가면 슬쩍 얼버무린다. 이 얼버무리는 행동이 역설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스리스 문제는 사실 결혼한 지 3년 정도만 되도 남자들 사이에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참 슬프게도. 물론 그 남자들의 성욕 자체가 시들해진 것은 아니다. ‘가족’과의 섹스가 시들해진 것뿐. 그런 남자들에게 ‘왜 성욕을 밖에서 해결 하냐?’고 묻는다면 이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아내가 더 이상 섹시하지 않아서? 그렇다면 반대로 왜 집밖에 있는 여자들은 섹시할까? 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이 책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언뜻 뻔한 답이 나올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저자가 유럽 문화와 미국 문화를 모두 경험한 탓에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색다른 것 같다.
저자에 의하면 집밖의 여자들, 혹은 남자들이 여전히 섹시할 수 있는 이유는 나와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다. 집밖의 대상이 꼭 실재하는 인물일 필요는 없다. 상상 속의 이상형이거나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들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오래 사귄 연인이나 결혼한 배우자와는 서로를 독립적인 존재로 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사라졌다. 에로티시즘은 너와 나 사이에 위치한 공간에서 불붙는데, 그 공간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대신 친밀감이 서로를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친밀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친밀감은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가 보기에 부부를 포함한 현대의 커플들은 지나치게 친밀해졌다. 정확히는 친밀감의 개념이 오해되고 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불안감을 극복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예 사라져버린 거리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거리가 다시 벌어지는 동안 꾀나 불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비밀을 그대로 지켜주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궁금해서 견딜 수 있을까? 상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그 감정이 미묘한 떨림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