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 셰익스피어 에세이 3부작
안경환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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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벌거숭이 시절에 다빈치나 뉴턴처럼 하나의 전문영역을 뛰어넘어서 여러 분야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실력을 보여주는 존재들이 엄청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롤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법학자가 법의 눈으로 본 문학으로 세상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 포착되어 그의 덕후가 되었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관심에는 영어 문화권의 자부심인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 땅에 현해탄 건너 섬나라의 침입으로 혼돈의 도가니가 정리되고 있을 즈음에, 저 바다 건너 이억만 리 또 다른 섬나라에는 아주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극작가이었다. 그는 희극과 비극, 소네트와 시, 장르를 불문하고 아주 다양한 주제를 이전의 중세와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언어로 담아냈다. 알려진 그의 배경, 배움이 짧았던 시골뜨기 청년으로는 쉽지 않은 것들이기에, 진짜 셰익스피어는 따로 있다?(21페이지)는 논쟁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심지어 400년이 지나서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는 것이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정되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외적 환경에 대한 논란은 그의 작품 내용에 대한 해석은 획일적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그의 작품들을 21세기 대중의 색안경으로 본다.

 

 

모든 고전은 끝없는 현재화 작업을 가미하지 않으면 수명을 연장할 수 없다(412페이지). 먼저 내용을 정리하고 나서 핵심 테마를 분석한다. 그리고 법학자는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면서, 그 만의 눈으로 수 백년 전의 고전(classic)대중의 관점에서 현재화를 한다. 그것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정도로 영미 문화의 자부심을 지닌 공간에서 검은 머리 이국인에게는 어떤 정신적 영감을 줄 것인지를 간접적 체험을 통해서 재창조 공간이 만들어진다. 맥베스, 말괄량이 길들이기, 페리클래스, 사랑의 헛수고, 심벨린, 두 귀족 친척, 소네트,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 그리고 존왕, 에드워드 3, 헨리 4, 헨리 6, 헨리 8세와 총강을 통해서 만난다. 고전은 원작의 언어로 읽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오로지 문리적으로만 본다면,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형식은 단순히 희곡이지만, 단순한 그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지적 테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분명히 요즘의 시대와는 아주 많이 다른 시대의 산물을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색을 입힌다.

 

자전적 스토리?(198페이지) 그의 작품에는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개인적 체험과 시대적 사건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그에게 시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상의 머리를 덮고 있는 이불, 날마다 발을 담그고 있는 세숫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연애는 당연히 부정되었고 여성은 남성의 재산에 불과하였다. 과부는 악처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희곡은 특성상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 매몰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위해서는 당대 권력자의 입맛에 맞아야 했고, 대중의 관심을 위한 것으로 창조되어 지속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흑사병의 확산으로 중세 봉건의 암흑기는 몰락하고 새로운 문예부흥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거기에다가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국교로의 변동은 물적, 정신적 변동은 큰 진폭을 가져왔다. 이는 기회뿐만 아니라 위기도 불러왔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적 욕망의 표현이 강해지자 남성들의 위기의식은 고조되었다(132페이지). 더욱이 정치적으로 명예혁명의 공간으로 넘어가면서 더 많은 정치색은 그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튜더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26페이지)은 약방의 감초일 수밖에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부끄러움 또는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총 334회나 등장한다. 죄의식은 총 33번이 사용되었다(240페이지). 수치심과 죄의식이라는 법과 종교, 도덕의 존재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권력이 법이 되는 절대 권력 시대에는 윤리만이 정당화의 기준이었다.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그 기준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특히 비극의 주인공은 고귀한 인물이어야 했던 셰익스피어에게 수치심은 영적 여행의 출발점이다(243페이지). (명예)혁명의 공간에서 법치주의로의 길은 권력자의 모든 행위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다만 여전히 법은 강자의 편에 서 있지 않다고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약자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노골적으로 나()의 약육강식을 추구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법은 셰익스피어 예술에 심층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머쥐어야 할 중요한 열쇠이다(44페이지). 혼자 사는 것에는 법이 필요 없지만 나 이외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 순간 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도 이를 철저하다. 청춘과 사랑의 유한성은 기한이 정해진 임대차계약이다. 11의 배타적 연인관계는 물권적 효력을 인정받는 전세로 비유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 권력과 사랑의 47정의 모든 오욕에 법적인 관점이 장착되어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상실과 결실이 법의 보장 아래 있는 가치이다. 코먼로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도 빼놓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일상이 철저하게 법의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며 상상과 내일로 나아간다.

 

마리나와 심청(124페이지) 순수한 상상력 이상의 것이 여성성에 묻어 나온다. 21세기 한국인이 셰익스피어에 상상력으로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를 고전적 심청이보다는 최인훈과 황석영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심청이와 연결하려는 창조적 과정이다. 딸이 병든 아비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준다는 점에서, 독자로서의 피동적인 상상력 이상의 능동적인 창조과정이 있다. <두 귀족 친척>에서는 감옥에 갇힌 두 주인공이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는 것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들의 화두에 좀 더 끈끈하게 치밀한 연관성으로 상상의 공간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독자의 독자가 더 창조적으로 접근하여 그 빈틈을 메꿔야 하는 숙제를 남겨 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을 지배하는 자는 세월이다. 세월은 인간의 어버이도 되고 무덤도 되지. 제가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주면서도 이쪽에서 바라는 건 순순히 주지 않지.----(페리클레스. S.7.45~47; 재인용. 117페이지)

 

우리 세대에게 셰이스피어는 필수 중의 필수이자 상식이었다(8페이지).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왜 읽는가? 그것도 400여 년이 훌쩍 지나서, 완전히 다른 인종, 민족의 고전(classical)을 읽는 것은 그리 가벼운 작업이 아님에도 꼭 상식으로 삼아야 하는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삼던 시대는 고려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대와 세상을 치밀하게 탐구하고 사색하는 감상하려는 자세는 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영원히 간직해야 할 지성의 체계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 세계의 Grund norm이 되는 것이다. 17세기나 21세기나 생존의 근본 방식은 변함이 없다. 문자를 매개로 하는 남성 우위의 20세기를 지나서, 영상의 매개로 남녀평등의 지식 대중화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classic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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