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 타계 15주기를 기리며 후배 소설가들이 엄선한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 나왔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사명감이 들었다.
10개의 단편은 전쟁과 분단과 민주화 시대를 지나면서
가족 상실, 가난, 도시화, 소외 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다양한 인생을
마치 옆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짧은 분량에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들을 모아 보고 있으니 여러모로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1.
지금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특히 「애 보기가 쉽다고?」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번듯한 노신사 맹범의 딸 부부는 맹범에게 9개월 된 손자를 덥석 맡겨 놓고 외출을 한다.
그때부터 이 소설은 내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
맹범과 크게 다르지 않을 내 친정아버지 4시간 동안 애를 맡긴다면?
소파에서 한밤중에 깔깔깔 웃고야 말았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국회의원을 했든 어디에 살든 어떤 사람이든 개의치 않고 난리를 피우고,
할아버지는 아기를 어떻게 할 수 없어 데리고 생전 처음으로 전철을 타고 어쩌다가 재개발 지역에 다녀오면서
낯선 곳에서 번듯한 삶에 해 보지 않은 도움들을 청하고 종국엔 구걸까지 하며 4시간 동안 4년은 늙어버린다.
낮잠 잘 때가 가깝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되는 게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하다 못해 심상치 않은 적의마저 번득이고 있었다.(p.45)
어떻게 하든지 울리지를 말아야지
한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울음 끝이 질기다는 데 맹범씨는 거의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p.48)
이 작품이 1985년작이니 무려 40년 전의 단편인데도 마치 지금의 내 일상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아기를 제대로 키워보지 않고서야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이런 육아에 대한 묘사가
너만, 지금만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니 괜찮다며 내 일상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아기들은 아기를 키우는 모두에게 이런 놀라운 시간을 매일매일 선사한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p.69)
2.
이렇게 웃음을 주는가 하면, 전쟁과 분단. 민주화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아픔을 그린 작품들 앞에서는 몹시 숙연해진다.
전쟁 속에 젊은 여성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혹은 이렇게라도 젊은 군인들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이미 다 늙어버린 몸이지만 남자들에게 기꺼이 내어놓는, 노파라고 하기엔 '여자'인 그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전쟁 중에 한쪽이 내 오빠의 몸에 총질을 하고 다른 쪽이 내 아빠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해도
입도 뻥끗 못해서 결국 가슴에 구멍이 나 버린 모녀 (「부처님 근처」).
학생 운동 시절 아들을 쇠 파이프에 잃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은하계 주문을 외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어머니(「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정말 이런 지독한 삶을 다 누군가가 살아냈을 것만 같고, 그래서 아찔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