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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김한아 지음 / 알마 / 2020년 12월
평점 :
네 편을 빼곡하게 가득 채우는 다른 모양의 사랑, 다른 모습의 삶들을 보고 가슴이 따뜻해지면서도 또 낯설었다. 다르다는 취급을 늘상 받아온 우리가 이렇게 평범하게 삶 속에 자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에서는 열여섯 커플의 모습으로,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그의 이웃으로, <우리들의 우리들>에서는 퀴어 공동체-혹은 유사가족으로,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 게이, 그리고 그의 친구로 등장한다. 특히 퀴어 공동체 ‘우리들’의 회원인 비혼 한부모 가정 은하수와 은푸른하늘, 트랜스젠더 여성 사라, 고등학생 게이 승재는 나이도 직업도 달라 전혀 맞지 않는 조합일 것 같으면서도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답게 표정이 다 닮아 있어서, 세상이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물들은 각 단편에서 그런 사랑을 하는 주인공이기도 하고 그 주변인이기도 한데, 한두 명의 예외는 있을지언정 그런 퀴어 인물들을 이상하다 여기지 않고 그들과 행복해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또 그들을 사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정하면서도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정말로 이게 우리의 세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어딘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 분명 존재할 현재이면서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알리기 위해 한 발 먼저 당도한 것만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네 편을 관통하는 역사와 고고학, 유물이라는 키워드는 묘한 안정감을 준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가만히 속삭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도, 불안도, 혼란스러움도 우리가 받는 난감하고 불쾌하다는 시선과 가시 돋친 말마저도 나중에는 모두 지워지고 우리가 사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 존재했다는 사실만 남을 거라고. 출산흔 없이 옹관 속에 들어 있던 두 여성 유골이나 특이할 만큼 화려한 장신구를 한 채 발견된 남성 유골처럼 말이다. 마땅히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과거의 사실에 누가 이것은 거짓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될 것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다정하면서도 가장 단단하고 제일 오래 가는 흙이 되어 우리를 이야기할 수 있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 표정은 저렇게 다 닮아 있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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