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아물지 않는다 -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이산하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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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저자가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1987년에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써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드러냈는데 이를 꽁꽁 파묻고자 한 권력자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어 구속되었다. 이후 30여 년 동안 이름이 묻힌 채 살아야 했지만 그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 모두가 쉬쉬하는 일을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가수 이효리 씨가 이 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보았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라는 시구가 마음을 울렸다. 상처가 아물면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불의를 잊을까 다시 베어 상처를 내는 화자가 그려진다. 아물지 않은 생은 괴롭고 힘들겠지만 그 마음은 평온하리라.


시인이 쓴 짧은 글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사회, 정치, 이념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우리네 삶에 대한 내용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작은 일로 울며 웃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좋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연결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랑이 머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좋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숨결과 숨결이 모이면 물결로 변한다는 말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물 한 방울은 힘이 없지만 물방울이 합해져 너울대는 물결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의 말대로 희망은 옆 사람의 숨결을 느낄 때 오는 것이 아닐까. 희망과 희망이 모여 서로 연결될 때 삶은 따뜻함으로 차오를 것이다. 그 물결을 타며 옆으로 옆으로 온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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