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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2019년 우연히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 하게 되고, 소년원 최초의 다단계&블라인드&신비주의 독서동아리를 만들고, 저자 초청 북토크를 열며 오로지 재미로 즐거움을 느끼면서 따라오게 만드는 매력인 일을 벌인, 서현숙 선생님과 국어반 아이들이 보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록이에요.
저도 중.고등아이들과 공부를 해왔기에 더 의미있게 와 닿았어요. 지나고 보니 에피소드였는데, 그 시절엔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들도 떠오르고, 그땐 저도 어려서 품어주지 못하고 내보내버려, 두고두고 마음 아팠던 기억들..
맘에 드는 구절이 많아 밑줄 엄청 그었는데,
몇 부분 옮겨볼게요.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어야만 가능한 맞장구가 있다. 이런 비밀 공유는 친밀한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인데, 독자와 저자는 단 한 번의 만남에 이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 부분은 제가 독서 모임 하면서 오롯이 느꼈던 부분이에요. 분명 책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느 사이에 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다른 분의 책이야기 속엔 그 분의 마음이 담겨있고, 우린 분명 책모임을 연 것인데, 어느새 심리상담소가 되어버린 경험이 여러 번 있었어요.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삶과 세상에 대해 점점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처음 만난 작가 앞에서 이렇게 심한 수다쟁이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그것, 공감이나 소통이라는 흔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상투적인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단 하나만 존재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은 얼마나 건방진가.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 자만인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게 될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받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소년원 아이들은, 찬현이처럼 가슴에 얼음덩이 하나씩 안고 있다. 소년원에 있을 때야 위축된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바깥세상에 나가면 얼음덩이 같은 마음은 수시로 고개를 들 것이다. 내가 어디 다녀왔는지 아는 거 아닌가. 내가 어디 다녀왔다고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가. 나를 경계하는 건가. 나를 배제하나. 이런 마음들. 성실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아이들이 적은 인상 깊은 문장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 하다. 인상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 마음을 들키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 말이다. 마음의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몇 글자 안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
아 ... 다 옮겨적다가는 책 한 권이 다 옮겨질것 같아서~
작가의 에필로그로 마무리 할게요 ^^
# 우리나라에 열 개의 소년원이 있고, 소년원에 갇힌 청소년이 1000명 이라고 한다. 우리가 1000명의 청소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소년원 본연의 목적처럼 우리 사회는 그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더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삶을 살지 못해도 좋으니, 사회의 저 아래에서 우리에게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혹시 아닐까.
# 그는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욕망이 가는 길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교정.교화가 아닐까. 소년이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좋은 삶을 욕망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소년원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요즘 2주에 추천도서를 4권씩 읽고 활동해야 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완독을 목표로 치열하게 읽는 것에만 몰두해 있는 저를 보며, 내가 왜 이런 맘으로 책을 읽고 있나?! 하며 허우적대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맘에 들어오는 책을 읽으니 ㅎ 제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행복해했던 모든 과정이 설명이 되더라구요. ^^
얼마전 읽었던 <사람, 장소, 환대>의 구체적 활동서 같은 느낌의 <소년을 읽다> 함께 읽어보실래요?
"우리 서로의 마음을 들켜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