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의 사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보람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이 흥미롭다. '죽은 자의 사치'는 말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줄곧 죽은 자가 어떤 사치를 누리는지 궁금했다.
 

내용은 한 대학병원 시체실에서 시작한다. 알코올 욕조에 시체들이 있다. 15년 동안 시체들이 쌓여갔다. 이 시체들은 의대 해부용이다.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오래된 시체들을 새 알코올 욕조로 옮긴다. 아무 생각 없는 불문과 남학생과 뱃속 아이를 지우기 위해 돈이 필요한 여학생이다. 어두컴컴한 지하 시체실에서 언제 죽었는지 모르는 시체를 옮긴다.
잠시 바람 쐬러 밖으로 나온 남학생은 환한 햇빛과 상쾌한 공기를 느낀다. 이곳에서 한 간호사와 소년이 지나가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시체와 달리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여학생은 유산을 포기한다. 아기에게 뚜렷한 피부를 갖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시체의 검고 딱딱한 피부가 싫었다.

두 학생은 거의 하루 종일 시체들을 옮겼다. 그러나 업무 착오가 생긴다. 본래 업무는 시체를 소각장에서 화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시쳇말로 '삽질'한 셈이다.

두 아르바이트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르바이트 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끝이 난다.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지만 끝이다. 여기서 저자는 독자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화장되기 전에 새 알코올 욕조로 옮겨지는 사치가 죽은 자의 사치인가? 시체들을 옮기는 일을 하는 동안 남학생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여학생은 생명력을 새삼 생각한다. 죽은 자에 비하면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다. 죽은 자가 누리지 못하는 절대 사치. 이 책으로 저자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죽음은 ‘물체’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죽음을 그저 의식의 측면에서만 생각했다. ‘물체’로서의 죽음은 의식이 끊어진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제대로 시작된 죽음은 대학 건물 지하에서 알코올에 잠긴 채 몇 년이고 견디어내며 해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사치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