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 백범 김구 비서 선우진 회고록
선우진 지음, 최기영 옮김 / 푸른역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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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7일 선우진옹(翁)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였다.
백범을 기억하는 이가 많겠지만 비서만큼 할까.
다행히 선우진옹이 올해 초 백범에 관련된 책을 한 권 남겼다.
책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이다.

 

저자는 1945년 2월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면서 백범의 비서가 됐다.
백범 등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5년 11월 고국으로 돌아왔다.  
1949년 6월26일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의해 백범이 서거했다.
그때도 저자는 백범과 함께했다.

 

약 4년간의 회고가 이 책의 줄거리이다.
특히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백범 선생 및 아들 김신씨와 함께 찍은 사진은 특히 유명하다.
그 사진이 이 책의 표지다.

 

저자는 백범의 일거수일투족을 이 책에 기록했다.
백범은 해방 후 남북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 김일성과 만난 이야기가 이 책의 백미이다.
김일성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북한의 상황도 알 수 있다.

 

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와의 관계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백범은 이승만 박사를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는 백범을, 시쳇말로 챙기지 않았다.
일견 백범과 이승만 박사의 사이가 좋지 않은 듯 보인다.
실제 이승만 박사는 백범의 행보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백범이 죽음을 맞이한 당시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민족의 남북 분단을 저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백범은 한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허망하다 싶을 정도로 유명을 달리했다.
육군 소위가 왜 백범을 암살했을까.
백범은 당시 민족의 정신적 우상이었다.
이를 두고 이승만 정권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아무튼, 저자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안두희가 일어나자 내가 2층으로 안내를 했다. 백범 선생은 휘호를 쓰려는 듯 의자에 단정히 앉아 계셨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때가 12시40분을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선생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바로 지하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모 아주머니가 만둣국이 다 되어간다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위층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순간 식은땀이 났다. 정신이 멍해졌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백범 선생 방에서 바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별안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급하게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안두희가 손에 권총을 든 채 2층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래층에서 이풍식, 이태국 비서가 뛰어올라가려는 순간, 안두희가 권총을 계단에 철커덕 떨어뜨렸다. '선생을 내가 죽였다… '"

 

백범은 서울 서대문 옆에 있는 경교장(지금의 강북삼성병원)에서 생활했다.
이날도 경교장 2층에 있었다.
저자는 백범을 찾아온 안두희가 권총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도 무심코 넘어갔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백범 선생 비서로서 선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라며 복잡한 심정을 밝혔다. 
 
저자는 평생 잊지 못할 한을 간직한 채 대전 현충원에 누워있다.
저자가 측근으로서 본 백범의 마지막 4년을 우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무렵까지 우리 역사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권한다.

 

한편, 안두희는 감옥에서 풀려나고 군으로 복직했다.
한국전쟁에서는 2계급 특진도 했다.
예편 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이리저리 숨어 지냈다.
1996년 10월23일 인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중년 남성의 몽둥이에 맞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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